정호승 시인은 나이가 70이 넘은 시인이십니다. 지난번 읽은 이상국 시인의 시에 감탄하여 시집을 고르다 연세가 있는 분이라 빌렸습니다. 서정시를 쓰는 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의견이 다르다고 고래고래 핏대를 세우며 태극기를 앞세워 줄을 세우는 노인들을 보면서 그들이 시를 읽는다면 좋겠다는 허망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은 혼자서만 살 수 없습니다. 내 의견에 곰팡이가 핀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좋겠습니다. 세상에는 기쁜 일도 있지만 슬픈 일도 있고, 그렇다면 동시에 슬프고 기쁜 일도 왜 없겠습니까? 시인의 “슬프고 기쁜” 일은 무엇인지 들여다보았습니다.
슬프고 기쁜
꽃이 저 혼자 일찍 피었다고 봄이 오는 것은 아니다
꽃이 저 먼저 져버렸다고 봄날이 아주 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저 혼자 걸어간다고 새로운 길이 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길이 다 무너졌다고 길이 아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가는 곳마다 비가 와서 길은 진흙탕이 되었다
진흙탕 길을 걷는 내 발자국마다 그래도 꽃은 피었다
오늘은 선암사 고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다가 나를 바라본다
매화 향기에 취한 새들이 홍매화 꽃잎을 쪼다가 나를 바라본다
작은 새의 슬프고 기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당신을 사랑한다
새의 눈빛을 지니지 못한 당신도 사랑하다가 영원히 잠이 든다
마음 품을 넓혀 이렇게 세상을 볼 수 있는 마음은 저는 언제쯤 가질 수 있을까요? 자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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