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의 나이는 제 딸의 나이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감정이입이 잘 됩니다. 제가 젊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텐데 딸을 키우면서 받았던 행복과 딸에게 잘못하여 느끼는 고통을 체감한 나이가 되어보니 또래의 아이들(사실 아이는 아니지요)이 하는 말을 산골을 흐르는 시냇물 소리처럼 흘려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물며 아비의 소신으로 인하여 덩달아 고통을 받은 아이의 이야기니 더욱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고통을 보며 아버지를 원망하는 게 보통의 아이들일 겁니다. 작가 조민이 집에서는 아버지에게 어떤 원망을 했는지, 어머니에게 어떤 위로를 했는지 저는 모릅니다. 닥친 어려움을 정면으로 맞선 것이 언제부터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를 책을 통해 듣고 싶었습니다. 몇 년도 가지 못할 권력을 위해 한 가족을 도륙한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나 복수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쉬운 방정식을 풀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귀한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모습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책을 낸 것에 응원을 보냅니다.
그의 글 한 꼭지 중에 그의 연애관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2023년 32살의 청년의 생각입니다.
“사랑받는 것, 대우받는 것이 과연 나에게 있어서도 행복의 지표가 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왜냐면 그것들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것, 내가 존중하고 싶은 사람을 대우해 주는 것은 내 의지로 가능한 일이다. 내 인생은 내가 좌우할 수 있어야 한다. 남의 호의에 기대어 나의 행복을 결정한다면, 그것은 정말 불안정한 삶이 아닐까. 연애에도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나란히, 친구처럼 공평한 관계에서 서로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주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 맞춰가는 삶을 살고 싶다. 서로에게 무언가 필요하면 자신을 희생하고 상대를 책임지는 ‘동지’를 만나고 싶다.” (34쪽)
1987년 결혼을 앞두고 저는 아내가 친구 같고 누이 같고, 어머니 같고 동지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손목 걷어붙이고 힘을 모아 극복하는 동지를 원하면서 동시에 아내가 친구 같이 친근하고, 내가 보호할 누이 같으면서도 저를 어머니가 그러듯 아껴 주길 바랐습니다. 꿈이 야무졌지요? 아내는 제가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아니 저의 꿈을 말했지만 아내의 신념과 맞지 않아 귓등으로 흘렸을 겁니다. ‘이 남자는 꿈도 있고 추진력도 있어 경제적 사회적으로 성공할 것이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내가 믿고 의지할 사람이다’는 생각을 아내는 했다고 합니다. 결혼할 상대를 구하는 당시의 여성으로서 당연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친구를 얻었고 어머니를 얻었지만 동지가 되어달라는 저의 요청은 수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으로 아내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아내의 태도에 제가 보호할 누이라기보다는 약간은 미운 누이를 데리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건 시대를 읽지 못한 저의 불찰과 터무니없는 욕심을 얘기하는 것이지 아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정말입니다.
지금도 남편의 성공은 아내의 내조에 달렸다고 생각하며 남편을 조종하는 극성 아내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라떼는 남편의 성공이 아내의 내조에 있었다는 천편일률적인 성공담이 여성 잡지에 숱했습니다.
32살 그의 연애관이 이제는 보편적인 생각이 되었을 것입니다. 동지를 구하는 연인들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그럼에도 서로에게 오빠가 되고(이미 호칭으로는 모든 부부가 오빠 동생이 되었지요?) 누이가 되어 서로를 보살피고(누나가 되고 동생이 되는 것도 포함합니다) 친구가 되어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행복하길 바랍니다. 기왕이면 어머니가 자식을 보살피듯 서로를 보살피면 금상첨화이지만 세상은 모든 것을 다 주지는 않으니 그중 한 가지만이라도 성취하시면 성공이라고 자축하시길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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