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책을 부릅니다. 좋은 책은 좋은 책을 소개합니다. 제가 읽은 최초의 추리소설은 에드가 앨렌 포의 ‘검은 고양이’였습니다. 영화로도 드라마로도 각색이 되어 많이 유행했던 내용입니다. 작가를 검색하니 1809년에서 1849년 짧게 살다 갔습니다. 2세기 전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은 제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의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로 소환되어서 각인된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에드가 앨런 포는 아가사 크리스티를 불렀고 그를 저에게 소개했습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은 지금도 재미와 흥미를 잃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1890년에서 1976년 동안 존재했던 작가는 지금도 잊히지 않고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합니다. 제게 레이먼드 챈들러를 소개한 분은 경제학자로 기억합니다. 경제학자의 추리소설 소개라? 다음부터는 전공이 다른 분의 소개는 조금 더 신중히 듣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그리 바쁘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저로서 배타적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는 말입니다.
과거 추리소설 작가의 생멸기간을 확인하게 된 것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그랬습니다. 보통은 그러지 않는데 말이죠. 레이먼드 챈들러는 1888년에서 1959년간 미국에서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한 작가입니다. 과문한 관계로 저는 이번에 처음 그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살인의 예술’이 그것인데 모두 다섯 편의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근대 미국의 풍경은 영화로도 워낙 자주 보았으니 이야기를 읽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다만 생선을 발라 먹다 자꾸 가시에 걸린 듯, 길을 가다 자꾸 돌부리에 차인 듯 책을 읽는데 속도가 붙지 않았습니다. 한여름 밤의 더위를 식히려고 고른 추리소설인데 말입니다. 600쪽에 가까운 분량의 챈들러의 다른 책도 빌렸는데, 이런 속도라면 정한 기간 내 다 읽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섯 편 중 3화, ‘사라진 진주 목걸이’만이 재미있게 읽혔습니다. 다른 이야기들은 독자의 목덜미를 쥐고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서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매력이 조금은 덜 했습니다. 많은 분이 훌륭한 추리소설이라며 소개를 하셨는데… 아쉽게도 저와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운전을 하기 전에도 술을 마시고, 운전 중에도 술을 마십니다. 운전 후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자꾸 마십니다. 음주운전을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시대가 달라 그저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잘 넘어가지가 않습니다. 음주가 왜 필요한지, 그것이 등장인물의 성격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냥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넣은 이야기인 것도 같습니다.
작가는 말년에 알코올중독에 빠졌다는 소식을 어디선가 읽었습니다. 술, 과용하시면 안 됩니다.
'매일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무살 반야심경에 빠지다. 도올 김용옥 지음, 통나무 간행 1 (1) | 2023.08.29 |
---|---|
노파가 있었다(There Was an Old Woman). 엘러리 퀸 지음, 김예진 옮김, 시공사 간행 (0) | 2023.08.27 |
유르스나르의 구두. 스가 아쓰코 에세이, 송태욱 옮김, 한뼘책방 간행 (0) | 2023.08.18 |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퍼플레인 간행 4 (0) | 2023.08.14 |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퍼플레인 간행 3 (0) | 2023.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