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께서 심원한 반야의 완성을 실천하실 때에 오온이 다 공이라는 것을 비추어 깨달으시고, 일체의 고액을 뛰어넘으셨다(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사리자여! 오온개공이라는 말이 과연 무엇이겠느냐? 색이 공에 다르지 않고, 공이 색에 다르지 않으니,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나머지 수. 상. 행. 식도 이와 같다는 뜻이다(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여! 지금 내가 깨달은 세계, 반야의 완성을 통해 조견한 세계, 제법이 공한 이 모습의 세계는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으며, 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다(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그러므로 공의 모습 속에는 색도 없고, 수도 없고, 상도 없고, 행도 없고, 식도 없다. 따라서 안. 이. 비. 설. 신. 의도 없고, 색. 성. 향. 미. 촉. 법도 없고, 또한 안식계에서 의식계에 이르는 모든 식계도 없다(是故空中 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乃至 無意識界).
뿐만이냐! 싯달타께서 깨달으셨다고 하는 12연기의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사라진다고 하는 것도 없다. 이렇게 12연기의 부정은 노사의 현실에까지 다다른다. 그러니 노사도 없고 노사가 사라진다는 것도 없다. 그러니 이러한 12연기를 요약적으로 표현한 고. 집. 멸. 도 또한 없는 것이다(無無明 亦無無明盡乃至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앎도 없고 또한 얻음도 없다. 반야 그 자체가 무소득이기 때문이다!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보리살타 즉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고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다.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는 고로, 공포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전도된 의식과 꿈같은 생각들을 멀리 벗어나 버리고, 끝내 열반에 도달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고로 무상의 정등각을 얻는다(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그러므로 그대들은 다음의 사실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반야바라밀다야말로 크게 신비로운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더 이상 없는 주문이며, 비견할 바 없는 뛰어난 주문이라는 것을! 이 주문이야말로 일체의 고를 제거할 수 있다. 진실한 것이요, 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故知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故).
마지막으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겠습니다. 곧 그 주문은 다음과 같이 설하여집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薩婆訶). “건너간 자여, 건너간 자여!, 피안에 건너간 자여!, 피안에 완전히 도달한 자여!, 깨달음이여! 평안하소서!”
이상은 도올 선생이 반야바라밀다심경을 주해한 내용입니다. 과거 부모님의 제를 지내기 위하여 법당에 갔을 때, 독경 마지막에 읊었던 경으로 종교의 유무나 종교의 구분과 관계없이 누구나 한번쯤은 들었던 경전입니다. 선생에 따르면 반야바라밀다심경에 나오는 ‘주문’은 주술적인 밀교적 장치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주문(mantra)이라는 것은 인간의 논리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시적인 암호로 표현하는 노래와 같은 것이며, 사실 리그베다와 같은 인도 고유의 경전 전체가 주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부가 암송된 것이기 때문이죠, 사실 “브라만”이라는 신의 이름도 “만트라(mantra=주문)”와 어원을 공유한다고 합니다. 제가 외는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도 다름이 아닐 듯합니다.
반야바라밀다심경을 풀이한 내용은 아마도 인터넷에 많이 있을 것입니다. 책의 마지막 4장에 있는 선생의 반야심경 풀이는 매우 이해하기 쉽습니다. 제가 선생의 한글 주해만을 그대로 옮긴 것은 선생의 책을 구해서 읽어보시기를 권하기 위함입니다. 오온, 수상행식, 향미촉법, 무안계, 무명,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등의 개념은 책을 보시면서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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