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노파가 있었다(There Was an Old Woman). 엘러리 퀸 지음, 김예진 옮김, 시공사 간행

무주이장 2023. 8. 27. 12:39

 

  엘러리 퀸이란 작가를 처음 알았습니다. 엘러리 퀸은 ‘노파가 있었다’에서 나오는 탐정입니다. 책 속의 주인공이 작가라니..... 궁금증은 작가 소개에서 금방 풀립니다. 엘러리 퀸은 두 명의 작가가 내세운 필명이었습니다. 만프레드 리(Manfred Bennington Lee 1905~1971)와 프레더릭 다네이(Frederic Dannay, 1905~1982), 이 두 사촌 형제의 필명입니다. 작가가 쓴 ‘노파’의 가족을 소개합니다.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어릴 때는 작가의 의도를 알아채고 그래서 범인을 찾는 수고를 같이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범인 색출에 제 힘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범인이 누구며 어떻게 찾았는가를 설명하면 빈약한 제 추리 능력이 부끄러웠습니다. 많이 읽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생각은 방법론에서 오류가 있었습니다. 작가는 이야기를 만들면서 독자가 쉽게 범인을 찾아낼 수 있게 선의를 베풀면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작가는 심술을 부립니다. 독자가 쉽게도 빠지고, 어렵게도 빠질 수 있는 함정을 군데군데 파는 수고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함정을 피해야 이야기 속의 탐정처럼 범인을 잡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로서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야기는 모든 증거를 순차적으로 보여주지만 작가의 의도에 따라 필요한 순간에야 증거의 의미를 알 수 있는 단서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작가가 보여주기 전, 모든 증거를 독자적으로 조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권한을 가진 작가와 순종하여야만 하는 독자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는 구조이기에 추리 소설을 읽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이야기 속 독자가 빠지기 바라며 파 놓은 함정은 적절하고 타당한가? 범행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가? 범인의 범행 동기는 얼마나 사실적이며 설득력이 있는가? 이 모든 요소요소의 도구들이 적재적소에서 제대로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가? 책을 덮은 후 이렇게 묻고 거기에 답을 쓰면서 이야기의 재미를 평가하는 것이 추리소설을 읽는 방법이라고 이제는 생각합니다. 제가 ‘노파’의 가족을 소개하는 이유입니다.

 

  노파는 유명한 신발회사 포츠의 소유자입니다. 첫째 남편에게서 세 명의 자녀를 얻었지만, 남편의 기질을 이어받은 아이들은 모두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 것으로 세평을 듣고 있습니다. 실종된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실종으로 인한 사망선고를 할 수 있지요. 첫째 남편의 사망선고를 기다렸다는 듯, 젊었던 노파는 둘째 남편을 맞이하고 또 다른 세 명의 자녀를 얻습니다. 이번에는 모두 정상적인 사람이란 평가를 받는 아이들로 실제 노파의 신발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쌍둥이 두 남자 형제가 부사장으로 회사를 경영합니다. 막내는 딸입니다. 첫째 남편에게서 얻은 아들(장남)이 자기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이부형제와 결투를 하고는 쌍둥이 동생을 죽이게 되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연이어 쌍둥이 형도 침실에서 살해됩니다.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 노파는 심장병으로 죽게 되고, 자신이 쌍둥이 형을 살해했다고 자백을 하는 문서를 남깁니다. 사건은 해결된듯하지만 탐정 엘러리 퀸은 화장실을 다녀온 뒤 밑을 닦지 않은 듯한 느낌, 전문용어로 찝찝함, 또는 찜찜함을 가집니다.

 

  쌍둥이 형제가 죽은 뒤, 장남은 신발회사의 사장이 됩니다. 사건으로 인하여 가장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얻은 이익은 곧 상실됩니다. 장남의 공백으로 둘째 남편의 남은 자식인 막내딸이 장남을 이어 회사를 물려받습니다. 첫째 남편의 남은 두 자식(딸과 아들)은 회사에 대하여 관심이 없어서 이익배당을 전제로 회사를 막내에게 넘깁니다. 신발회사의 공장장은 노파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생산을 책임지는 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이익을 얻습니다. 새로운 회장인 막내딸의 요청에 응답했다지만 그가 이익을 얻은 것은 분명합니다. 사건이 해결된 후 신발회사의 회장이 된 막내딸은 결혼을 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집안의 변호사로서 역할을 하면서 막내딸과 연인이었던 사람과 마침내 결혼을 하게 됩니다. 노파는 막내딸이 변호사와 결혼을 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회장의 남편이 되는 변호사는 어떤 이익을 얻을까요? 둘째 남편은 노파의 노골적인 무시로 인하여 파탄한 결혼생활을 형식적으로 유지하며, 자신의 친구와 무위도식을 하지만, 이제 노파의 죽음으로 인하여 자유를 구가하게 됩니다. 노파와 결혼하면서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린 노파의 강요로 잃었던 자신의 성도 다시 찾게 됩니다. 그와 가까웠던 친구는 어떤 이익을 얻을까요? 여러분들은 누가 범인으로 보이십니까?

 

  살인이라는 범행에는 분명 동기가 있을 것입니다. 유명 신발회사를 가진 집안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돈 많은 집안에서 일어나는 경영권 다툼이라든지, 돈 문제라든지 아니면 묵혀두었던 증오와 같은 감정들 말입니다. 저는 누가 가장 큰 이익을 얻은 자인가에 초점을 두었습니다만 결국 범인은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작가가 의도한 증거를 보여 주고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처음부터 짜임새 있게 복선을 깔고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엘러리 퀸은 이번 여름이 마냥 덥기만 한 날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