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점점 에세이를 읽기가 부담스럽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작가가 하든 마음이 쏙 가는 이야기를 찾기가 힘듭니다. 벨기에 출신의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를 동경하는 일본인 스가 아쓰코가 유르스나르에게 어떻게 빠져들었고, 그의 존재를 어떻게 확인했는지를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써내려 갑니다.
내면의 풍요로움을 가진 강인한 여성, 아카데미 프랑세르의 첫 여성 회원으로 대단한 능력을 가진 작가라고 스가 아쓰코는 소개하고 있지만, 쉽게 동의할 수 없었던 게 유르스나르의 작품을 본 적이 없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어쩌면 누구를 소개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소개를 완전히 믿지 못하는 세태를 살고 있어서 그런 지도 모릅니다. 스가 아쓰코는 1929년에 출생하였습니다. 한 세대를 먼저 산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글이 아무리 “차분하고 세련된 문장”이라고 번역가는 소개하고 있지만 섬세함 외에는 공감이 잘 가지 않는 일본인 특유의 감성이라는 선입감의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한 저로서는 한계를 느꼈고, 또한 일본어가 아닌 우리말로 번역된 글을 읽는 입장에서는 역시 쉽게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앞 세대를 산 유르스나르(1903~1987)가 열악한 사회 환경에서도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내 멋지게 발돋움하며 인생을 산 것에 대해서 스가 아쓰코는 우리와는 다른 공감과 동경을 가졌을 것이라는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여성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안타까운 우리 시대 여성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글을 읽으면서 소년 시절 독서클럽에서 감상을 이야기하던 많은 친구들 기억이 났습니다. 조금은 유치한 감상에 빠지면서도 쉽게 동경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50년 남짓 전 모였던 그 친구들은 스가 아쓰코를 좋아할까 궁금합니다. 아마도 좋아했을 것 같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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