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웬디 미첼, 아나 외튼. 조진경. 문예춘추사 3

무주이장 2023. 5. 20. 13:29

새로 도전하게 될 관계

 

 치매 진단이 환자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 치매는 환자의 뇌 속에서 존재하는지 모르지만, 그 진단은 환자 한 사람의 생활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의 생활을 바꿀 것이다.”(63)

 

 주위를 둘러보시면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가깝게 알고 있던 사람들 중에서 치매로 고생하시거나 고생하셨던 분들에 대한 정보는 언제나 얻을 수 있을 지경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유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네 아버지가 생전에 그랬다. 며느리는 도둑이니 자기가 죽으면 절대 재산을 넘기면 안 된다.” 무슨 말이냐고 아버지가 왜 그런 말을 했겠느냐고 따지면서 물어도 어머니는 그 말을 번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아버지의 통장에 탐을 낸 적이 없는 것을 알기에 저는 분노했습니다. 다시 들으니 어머니의 말은 아버지의 돈을 아들인 내가 탐을 낸다는 말로도 들렸습니다.

알았습니다. 아버지 돈은 모두 어머니 통장으로 넣겠습니다.”

어머니와 헤어지면서 어머니의 욕심에 화를 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어머니는 그후 네 아버지가 저놈 아들도 믿으면 안 된다고 했다며 아버지의 말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때는 어머니의 말을 조금 의심하며 들었습니다만 불쾌했습니다. 그후 세월이 흘러 어머니의 치매를 확인하고는 분노했던 나를 용서했고 어머니도 용서했습니다.

 

 딸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실갱이 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엄마. 몇 번을 말해야 하노. 그게 아이다. 아까도 말했잖아.” 안타까워 목소리의 톤은 높아지고 주변의 형제들의 동의를 구하는 애절한 눈길을 던집니다. 이렇게 치매는 가족의 생활을 바꿉니다. 실랑이는 계속 이어지고 가족들의 관계는 암울해지고 어두워지며 무거워지면서 행복은 과거의 것이 되어갑니다. 환자의 뇌는 치매에 장악되었지만, 상대는 그저 스스로 조급함에 휘둘리고 있을 뿐입니다. (83) 치매 환자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서로 내용을 바로잡아주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대신 이야기를 그냥 받아들인다죠. 그들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바로잡으면, 당신이 재확인하는 동안 그는 말을 더듬고 머뭇거리게 될 것이고, 당연히 생각의 흐름이 흐트러지게 됩니다. (85)

 

 저자는 혼자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렇게 딸들과 규칙을 정하고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점점 외로워지고 있다며, 아직 말을 할 수 있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것이고, 존재한다는 것을 자신에게 입증하기 위해 사람과의 접촉을 필요로 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간병을 하는 입장에서는 비록 간호사가 직업일지라도 환자를 직업적으로 돌보는 것과 환자가 된 가족을 돌보는 것은 아주 다르다고 합니다. 저자는 환자 대신에 일을 해주는 것은 상대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도우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직접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합니다. 환자와 간병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한 내용입니다. 머리를 때리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