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고립의 시대, 노리나 허츠 지음, 홍정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출판.

무주이장 2022. 8. 21. 16:59

고립의 시대, 노리나 허츠 지음, 홍정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출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도시든 시골이든 무리를 지어 살고 있습니다. 모여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외로움에 힘들어하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고립의 시대라고 부르면서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제안을 합니다. 한때 소외의 문제를 고민하며 어떻게 하면 소외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이 책은 소외보다는 조금 더 광범위한 외로움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소외는 외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의 하나일 뿐이지요. 저자가 말하는 외로움이란 단절되고 소외되고 배제되어 무시당하는 존재의 느낌을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외로움은 정신건강과 신체의 건강을 위협하고 경제적 위기를 부르고 정치적 위기를 불러 우리 사회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요인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저자는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원인을 개인의 내면적 문제에만 제한할 수 없다고 하면서 경제, 정치, 사회, 심리 그리고 개인의 책임까지 폭넓게 원인을 분석하고 나름 해법을 제시하고자 노력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외로움의 원인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도시는 사람들을 외롭게 만든다고 합니다. 도시의 익명성, 도시생활의 빠른 속도, 도시생활의 단기성(세입자들의 단기 주거, 직장인의 짧은 근무기간 등) 일인 가구와 같은 도시생활의 단독성이 도시가 사람을 배제함으로써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는 겁니다. 시골이라고 다를 게 없는 것이 노인들만 존재하는 곳에서 예산 부족으로 지원이 줄고 주변화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합니다.

도시 내에 있는 적대적 건축물들은 노골적으로 사람을 배제합니다. 노숙자를 배제하기 위하여 앉기 불편하게 만든 켐든 벤치가 그렇고, 모스키토라는 고음 송출기를 사용하여 젊은이들이 일정 장소에서 배회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제는 단지 노숙자나 청소년들만을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배제시킨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스마트폰이 항시적 연결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외로움의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한 SNS의 이용이 사람을 외롭게 했을까요? 사람이 외로워서 SNS를 많이 이용할까요? 그 인과관계는 어떨까요? SNS에는 혐오와 학대의 콘텐츠가 더 많아 보입니다. 이것은 집단적 웰빙을 방해해서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외롭게 만든다고 합니다.

노동시장에서의 노동자도 외롭습니다. 오픈 플랜식 사무실의 제공, 재택근무자가 느끼는 외로움과 고립감, 일터 밖에서 가지고 일터로 오는 노동자의 외로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외로움 등은 점점 더 친절이나 협력 협동 같은 가치를 줄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본주의 체제를 감시 자본주의라고 저자는 부릅니다. AI면접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사람을 배제시키고, 평가체계로 매겨지는 사람마다의 평가점수, 디지털 채찍이라고 불리는 항시 감시체계. 직원을 대신하는 독립계약자 신분의 노동자 등의 외로움도 설명합니다.

로봇이 이제는 인간관계마저 대체하는 수준까지 왔다고 설명합니다. 지역 내 마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상권이 사라짐으로써 사람 간의 대화는 더욱 단절되고 외로움 경제라고 불리는 상업화된 공동체, 상업화된 공유경제는 외로움을 없앤다면서 실제는 공동체가 요구하는 양보는 없애 버린 상품을 팔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외로움을 없애는 방법으로 제안하는 방법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심화된 불평등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의 하나인 정부의 복지지출을 늘릴 것을 요구하고, 경제적 외로움을 낳은 실업을 줄이며, 자본주의의 계산법을 바꾸어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고 성공의 정의를 돈만 버는 것에서 탈피하자고 합니다. 지역의 중심가를 살려 지역주민들이 서로 의논하고 숙의하며 마을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민주주의 방식을 발전시켜야 자신의 존재감이 있어져 외로움을 없앨 수 있다는 주장도 합니다.

 

 대학을 다닐 때 처음 들었던 군중 속의 고독을 느꼈던 시절이 기억났습니다.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렇지 못한 자신을 외롭게 했습니다. 소외당한다는 상시적 외로움은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못해서 그런 것으로 부모와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이라고 해서 성공을 한 것도 아니지만 가족을 이루고 티격태격 때로는 심하게도 갈등을 일으키고 조정하고 해소하면서 제가 느꼈던 외로움은 조금씩 해소가 되었습니다. 제가 외로움을 극복한 이유를 소개하면서 글을 맺습니다.

첫째, 끝날 것 같지 않던 군부독재가 사라지면서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닌 것을 맞다고 하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삶은 외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둘째, 고등학교만을 졸업하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에서 소외와 배제가 사라진 사회에 대한 기대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아직도 끼리끼리 붙어먹는 근친상간의 사회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보았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근친상간의 결과는 주걱턱이라는 유전병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셋째,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어서 그랬습니다.

넷째, 마을에서 같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주말농장 일도 행복감을 키웠습니다.

다섯째, 마을 공동체를 관리하는 일을 같이 한 사람들과 지금도 같이 의논하고 친구처럼 지낼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여섯째, 제가 행복이라고 생각한 것이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지위의 승격 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 변화가 저에게 있어서 외로움을 줄였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제 경험을 무려 400쪽에 걸쳐 설명한 책처럼 느꼈습니다.

예스24의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