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시선, 이승우 장편소설, 자음과 모음 출판.
아버지를 찾아 ‘휴전선에서 가까운 인구 3만의 도시’를 찾아가면서 주인공은 불길한 조짐처럼 ‘말테의 수기’의 첫 문장을 떠올립니다. 도대체 나는 그곳에 살려고 가는 것일까, 죽으려고 가는 것일까.
어머니의 부족한 것 없는 보살핌 속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의 존재를 생각하지도 않았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지극한 모성애가 부담스럽습니다. 29의 나이에도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는 자신은 모성애가 부담스럽다기보다는 어머니와 함께 온 자신을 보는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부담스러운 사랑을 제공하는 어머니의 서울 근교 집에서 요양을 하다가 주인공은 어디선가 자신을 보는 시선이 있고, 자신에게 금령을 내리는 존재를 느끼게 됩니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믿었던 그 존재는 다름 아닌 아버지임을 짐작하고는 아버지를 찾는 여정에 오릅니다. 그 여정의 처음이 휴전선에서 가까운 조그만 인구 3만의 도시를 인구 천만의 거대 도시 서울에서 사는 주인공이 버스를 타고 방문을 하면서 ‘말테의 수기’ 첫 문장을 떠올린 것입니다.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이 살려는 길이 아니고 죽으려고 가는 길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충 짐작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인정하면 사는 길이요, 이미 다른 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을 그가 부인하면 그는 죽으러 가는 길이 아닐까 쉽게 생각했습니다만 그리 간단하면 소설이 재미가 없었겠지요?
“내 아들이 아니다”라는 아버지의 부인을 확인한 주인공은 다시 말테를 떠올립니다. ‘말테는 성경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를 사랑받는 것을 거부한 사람의 이야기로 읽는다. 그는 사랑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예외적인 인물, 탕자가 된다.’ 그런 말테가 ‘어느 순간, 그에게 비로소, 사랑을 받는 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생긴다. 투명하고 환한 빛으로 자신을 감싸는 사랑을 해줄 이가 누구인지 마침내 알게 된 것이다. 이제 그는 오직 그 사랑만을 갈망한다. 그러나 그는 드디어 참으로 간절하게 신의 빛나는 사랑을 받고자 원하면서 그에게 이르는 길이 아득히 멀다는 것도 함께 깨닫는다.’ 주인공이 소개하는 말테의 수기를 마무리하는 문장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들은 전혀 몰랐다. 그를 사랑한다는 것이 이제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오직 한 분만이 자기를 사랑할 수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한 분은 좀처럼 그를 사랑할 듯싶지 않았다.”입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이 수기의 끝에서 멈추지 않고 머릿속에 든 생각을 손에 옮겨 쥡니다. 그리고는 좀처럼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 듯한 그 사랑이 가능함을 소망합니다.
아버지를 찾으러 간 그 길이 주인공을 살렸을까요? 아니면 죽였을까요? 소설을 읽으시고 그 답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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