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아 말해다오.
"네가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것이 제일 좋다. 살아보니 알겠더라.”
고모님이 제가 고민하는 걸 보시고 충고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났습니다. 바로 어제 같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저도 이제는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 사람은 벌써 60이 넘었을 겁니다. 잘 사는지 무얼 하고 사는지
궁금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보니 잠깐의 궁금증이었을 뿐 금방 잊었습니다.
젊은 시절 유행하던 노래를 듣다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잘 살았을까? 무얼 하고 살았을까?’ 마치 연극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나레이션처럼 과거형이 된 궁금증입니다. 고모님의 충고에서 풍기던 아쉬움과 아련한 아픔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제가 이제는
그때의 고모님의 나이가 된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만약 그때 그 사람을 힘껏 붙잡았다면 그 사람과 같이 살았을까요?
그래서 같이, 만약 같이 살았다면 나는 행복했을까요? 그런 생각이 스피커를 떠난 노래가사 중간 중간에 끼어들며 마음을
혼란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 느꼈을 아픔은 기억나질 않았습니다. 이미 그러기에는 많은 세월이 흘러서이겠지요.
고모님은 벌써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제가 키우는 아이들도 고모님의 충고를 듣던 그때 제 나이가 되었습니다. 큰놈도 작은 딸도
모두 연애를 한다고 분주합니다. 아들은 사귀는 아이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지만 어떤 성격의 아이인지 짐작이 갑니다.
작은 딸은 재잘재잘 내 옆에 앉아 연애담을 쏟아냅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아이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잘 살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집니다. 그렇다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살지 못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냥 세월을 살다보니, 아이들을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드는 생각일 뿐입니다.
옛날은 추억과 함께 흘렀고 지금은 그저 늙어가는 중년이 되어버려 새로운 추억을 만들 기력도 없겠지만 아이들의 사랑이야기에
같이 웃는 것이 행복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행복이 소망이 된 나이가 섭섭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갑자기 찾아온 질문에
이 생각 저 생각 했습니다. 여전히 스피커에서는 음악이 흐르고 있습니다. 요즘 노래 같지 않아 가사가 자꾸 귀를 파고듭니다.
다시 무언가가 궁금해지는 때는 언젤까요? 하얗게 파뿌리 같은 머릿결을 빗을 땔까. 세월을 살다보면 알 수 있겠지요.
세월은 언제나 다 알겠지만 말이 없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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