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망월폐견. 전우용의 시사상식 사전. 새움 간행 18

무주이장 2023. 7. 21. 11:45

  역사학자 전우용, 그를 안 것은 그가 출연하는 방송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자가 묻는 어떤 말에도 거침없이 기원과 출처를 알려주고,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정확한 용례와 잘못된 용례를 드는 해박함에 놀라서 그가 쓴 책을 읽으면 나도 상식이 늘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을 부려 고른 책입니다. 개가 달을 보고 짓는다는 말인데, 달이야 원래 항상 언제나 그 시각에 그 자리에서 뜨고 지는 것인데 개가 달을 보고 짓는 것은 어떤 연유일지 궁금했습니다. 그 궁금증을 하나씩 같이 해결하는 의미로 정리할 생각입니다.

 

삭발

 

 일제 강점 이전 우리나라에선 불교 승려 아닌 사람들이 삭발로 결의를 다지는 풍습은 없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나고 자라고 탈색되고 빠지기 때문에 생로병사의 사고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신체부위입니다. 불교 승려가 삭발하는 건 모든 욕망을 끊어 사고四苦에서 벗어나겠다는 결의를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군국주의 시대 일본 군인이나 야쿠자들이 싸움에 임하기 전에 ‘삭발’ 한 것도 불교의 영향으로 추정됩니다. 그들의 삭발은 모든 사사로운 관계를 끊고 오직 천황이나 조직에만 충성하겠다는 결의의 표현이었습니다. ‘삭발 결의는 일본 군국주의가 우리 문화에 심어놓은 식민지 잔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안중근은 이토를 죽이러 떠나기 전에 자기 손가락을 잘라(斷指) 결의를 다졌지 삭발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삭발 결의라는 식민지 잔재를 청산할 때도 되었다는 것이 선생의 주장입니다.

 

  선생의 주장에 대하여 과거 불의에 항거하여 삭발했던 분들에 대한 모욕이니 사과하고 글을 내리라는 사람이 더러 있었던 모양입니다.

 

  만세를 외치며 두 팔을 번쩍 드는 것 역시 일본식이자 식민지 잔재라고 일부 역사학자들은 주장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온갖 행사에서 천황폐하 만세(덴노헤이카 반자이라는 말은 아버지에게서 어릴 때 듣고는 아직도 기억하는 일본말입니다)를 외쳤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3.1 운동 때 만세를 선조들의 행위가 평가절하되지는 않는다고 선생은 설명합니다. 일제강점기에 만세를 불렀다고 다 독립운동한 사람이 아니듯, ‘삭발한 사람이 다 불의에 항거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모든 삭발불의에 항거하는 약자의 행위로 보는 게 더 문제일 겁니다.

 

  선생의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비교적 쉬운 삭발보다는 어려운 단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같습니다. 더 심하게 손가락을 자르라고 할 수도 없으니 세상이 좋아져서 단식도 단지도 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P.S. 오늘 방송에서 선생이 김건희의 리투아니아 명품 편집샵 방문기사가 리투아니아 현지 기자에게서 나온 것에 통탄하며 대통령을 수행했던 기자들을 비판하면서 오늘 우리들의 언론이 이 지경에 빠졌다고 한탄을 했습니다.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저도 사고의 회로가 선생과 비슷한 면이 한두 개 생기는가 봅니다. 선생의 글을 옮기면서 저도 대통령을 수행했던 기자들을 비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신일신 우일신입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