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전우용, 그를 안 것은 그가 출연하는 방송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자가 묻는 어떤 말에도 거침없이 기원과 출처를 알려주고,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정확한 용례와 잘못된 용례를 드는 해박함에 놀라서 그가 쓴 책을 읽으면 나도 상식이 늘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을 부려 고른 책입니다. 개가 달을 보고 짓는다는 말인데, 달이야 원래 항상 언제나 그 시각에 그 자리에서 뜨고 지는 것인데 개가 달을 보고 짓는 것은 어떤 연유일지 궁금했습니다. 그 궁금증을 하나씩 같이 해결하는 의미로 정리할 생각입니다.
쓸개
제가 다니는 회사는 침대 매트리스를 제작합니다. 생산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다수를 차지합니다. 회사의 건물이나 자재, 재고품을 관리하면서 간혹 유리창이 파손되거나, 제품이 파손된 것을 확인하고 누가 그랬냐고 물으면 한결 같이 첫 대답이 “나는 안 했어요”나 “몰라요”라는 답이 돌아오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분명히 같은 부서원들이 쓰는 건물이거나 물건인데 그것이 훼손되거나 파손되었다면 원인행위를 한 직원이 있을 것임에도 대답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회사일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조심하시라는 주의를 주는 정도에서 일을 수습합니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설이나 물건이 필요하면 보완을 하기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어떻게 된 것인지부터 미궁에 빠지니 일이 감정적으로 흘러갑니다.
“누구든지 다음부터 같은 일이 발생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건을 다 물리게 하겠다”는 말이 감정이 실려 전달됩니다. 저는 은행과 건설회사 시행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일을 하다가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 보고를 합니다. 보고를 한다고 해서 책임을 묻는다면 아무도 보고를 하지 않을 것은 누구라도 짐작이 됩니다. 그러니 재발을 방지하고 업무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그런 경험을 가진 저나 사장은 모든 것을 부정하는 듯한 직원들의 대답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생산직원들의 그런 대답은 오랜 기간 그들이 공장에서 일하면서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체득한 것은 아닐까 짐작을 했습니다. 그러다 선생의 글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옮겨봅니다.
“일제강점기 고무신 공장에서는 기술자들이 고무신 ‘감’과 접착제에 농간을 부려 여자 직공들을 괴롭히곤 했습니다. 직공이 불량품을 만들면 벌금을 물리는 게 당시 관행이었는데, 하루에 불량품이 한두 켤레만 나와도 일당보다 많은 벌금을 내야 했습니다. 악질 기술자들은 이 관행을 이용해 여자 직공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곤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물러간 뒤 적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과거 일본 관리자들이 했던 짓을 그대로 답습했을 것입니다. 식민지의 잔재가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 이런 잔재들이 청소될 때까지는 오랜 세월이 흘렀을 것입니다. 고무신 공장의 큰아기는 얼굴이 예뻐야 감 잘 주고, 감독 앞에 해죽해죽 아양이 밑천이었던 세월이 독립이 된 이후에도 아마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감독에게 밉보이면 불량품이 나올 수밖에 없는 재료를 받아 일당을 넘는 벌금을 내는 일이 다반사인데, 불량품을 만든 직원이 내가 만들었다고 고백할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독립 후 70여 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식민지 잔재의 흔적이 남은 듯하여 불편합니다. 제 짐작이 틀리길 바랍니다.
선생의 글은 아베가 수출규제로 한국을 압박하는 게 저 시절의 고무신 공장 악질 기술자가 하던 짓과 똑같다는 내용입니다. 한국인들을 ‘부품과 소재’로 협박하고 겁탈하려는 것인데 지금의 한국인 중에도 악질 기술자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쓸개 빠진 것들이 많다는 얘기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선생의 얘기를 듣다가 옆길로 샜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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