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장편소설, 문학동네 간행

무주이장 2023. 4. 14. 12:30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장편소설, 문학동네 간행

 

 소설의 문체가 힘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야기가 힘이 있는 것인지, 글을 읽으면서도 일자목이 주는 통증에 목을 의자에 기댄 채 책을 높이 들어 읽고 있음에도, 책을 쥔 손목에 힘이 잘 빠지지 않았습니다. 읽는 내내 힘을 얻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런 기분 요즘 잘 느끼지 못했던 든든함입니다. 책 속, 작가의 사진에서 좌우로 헝클린 듯한 머리 모양이 자유분방한 소설 속 주인공이 생각났습니다. 누구도 머리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시비 걸지 않을 가족들의 모습을 상상하라고 고른 사진은 아닐까 잠깐 엉뚱한 생각이 스쳤습니다.

 

 심시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할머니로부터 가지가 뻗은 족보가 심시선 가계도라고 먼저 소개를 하면서 글은 시작합니다. 빌려온 책이라 직접 책에는 메모를 못하고 가계도를 따로 그린 후 소개되는 사람들을 확인하는 대로 직업, 성격 등을 기록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좀처럼 없을 듯한 가족들을 지켜보면서도 어딘가에는 있을 법도 하다는 생각에 자꾸 유쾌해집니다.

 

 시선 할머니의 기록을 소개하면서 각 장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심시선 할머니의 삶과 예술관, 현실인식, 가족에 대한 평소의 생각, 구질했던 과거, 억압받은 젊은 시절, 운 좋게 만난 인연들이 숨겨져 있는 할머니의 기록이 제가 살았던 기억을 소추합니다. 누구나 색깔이 다르고 구도도 다르지만 비슷한 이런저런 그림을 그리며 기록하고 살았지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살아왔으니, 어떻게 죽는지 모르고 또 죽을 것이다.”(239) 시선 할머니는 자기의 삶에 충실하는 정도로 자식들의 삶에 충실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습디다. 자신의 마음을 건조한 듯, 때로는 쿨하게 표현하는데 그 영향이 자식들의 삶에도 그대로 묻어나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엄마의 마음 조각 몇 개씩을 가지고 있다는 자식들의 말에서 시선 할머니의 가족 사랑은 증명이 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다”(288)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말 같기도 하지만 곱씹으면 싫어하기 어려운 맛이 나는 말입니다. 무엇도 이룬 것 없는 것 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는 저에게 위로의 말로 들렸습니다. 오늘도 하루를 사시는 여러분들, 밥 세끼 먹는 것에 질리지 않으시죠? 대단한 생존 재능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회사일에 질리지 않고 다니시는 분들, 돈 때문에 다니시는 것으로 자신을 조려서 뒹굴뒹굴 생각했다면 그게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재능이 있어 지치지 않고, 질리지 않은 채 다니시고 있는 것입니다.

 

 작가에게 힘이 있어서 이렇게 우리에게도 힘을 보태는 게지요. 고마운 일입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