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모르는 사람, 이승우 지음, 문학동네 출판.

무주이장 2022. 8. 16. 11:53

모르는 사람, 이승우 지음, 문학동네 출판.

 

하찮은 것에 간절해지지 말자는 말을 하찮은 것에 간절해지는 나를 향해 주문처럼 하곤 했다.’ 책의 차례도 나오기 전에 책의 시작에 한쪽을 할애한 글입니다.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가가 기독교를 소재로 해서 글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저 주문을 나도 기도하면서 했던 기억도 있었을 것 같다는 기시감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첫 소설 모르는 사람에서 저 글을 찾아내고는 참 잔인한 문장이구나반전이 있었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꿀처럼 달디단 신혼을 보내고 나서, 아이를 낳고, 아이를 기르고, 지지고 볶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초로에 접어든 저도 한때는 모든 것이 하찮은 것 같았고 하찮은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찮은 것의 중력에 이끌려 살았던 저를 혐오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은 견디는 것이다는 현실인식이 생겼습니다. 절망이었고 고통이었습니다. 모든 일이 의미가 없어졌고,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가장 멀리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은 가장 모르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모르는 사람으로 남아 있던 아버지는 아프리카의 레소토에서 선교사로서 살다가 말라리아로 죽었다는 소식을 아들이 듣게 됩니다. 아버지가 남긴 글을 통하여 아버지가 무엇으로부터 간절하게 도망치고 싶었던 것인지를 짐작하게 됩니다. 간절해지지 않을 하찮은 대상이 바로 어머니이고 아들인 자신일 수도 있음을 알아채고는 회사에 나와서 자신을 도와달라는 어머니의 희망에 반대하며 늘 대꾸하던 말을 이제는 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고백합니다.

서른한 살의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머니 앞에서, 글을 쓰는 것이 좋고, 회사일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선택이 잘못되었던, 잘 한 선택이지만 일상의 진부함에 낡아버려 남루함만 남은 듯한 마음 때문이던, 어처구니 없는 노년의 망령 때문이든 내가 하찮은 것이라고 불렀던 삶의 조건에 붙은 것은 철 지난 선거공보 같은 것이 아니라, 나와 얽힌 사람이고, 가족이라고 부른 피붙이이며, 이 피붙이는 나의 선택의 결과였다는 엄연한 사실을 확인하면 그저 하찮고 그래서 간절함을 버리고 도망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에 주인공에 대한 애잔한 마음은 처음 글을 읽을 때의 순간일 뿐이고, 참 잔인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끝내 버릴 수 없었습니다. 아들을 통해 남편의 소식을 듣고 심상한 표정으로 말없이 밥을 먹는 아내가 잦아드는 목소리로 하는 말을 들으며 생각을 굳혔습니다. '이 사람 참 잔인하구만.'

살고 싶었던 삶을 살았으니, 네 아버지는 행복했겠구나.”

 

 우린 남의 불행을 보기보다는 자기의 불행에 빠져 어떤 잔인한 일도 서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할 말을 잃습니다. 그럼에도 그 잔인함을 수용하는 사람에게서 다시 사랑을 봅니다. 어려운 것이 사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견디는 일이 되면 안 되겠습니다.

예스24의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