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장편소설 3

희망. 양귀자 장편소설. 쓰다 간행 3

그때 말은 안 했지만 우리 희망이 있었지? 지금 젊은이들은 소설 ‘희망’ 속의 주인공들이 생소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산가족이 되어 북에서 떵떵거리며 살았던 기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힘들게 사는 딸에게 신세를 지며 살다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한 신철호라는 노인의 이야기가 쉽게 공감가지 않을 것입니다. 딸의 교통사고 보상금을 사기를 당해 잃고, 손자는 정신이 박약하고, 노인은 끝내 현실에 정착하지 못한 채 고향으로 가겠다며 손자를 두고 나성여관을 떠나는 이야기는 통속적입니다. 그러고 보니 1980년대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기도 했던 것도 같습니다. 공부 잘하고 똑똑했던 형은 운동권에 투신하여 늘 경찰에 쫓기고, 자신과 조직을 보호하려던 선배는 고문으로 인하여 심신이 피폐해져 폐인이 된 이야기도 그렇습니..

매일 에세이 2023.12.04

희망. 양귀자 장편소설. 쓰다 간행 2

나성여관 같았던 우리들의 집 월남으로 파병 간 직업군인 아저씨가 한옥 집의 주인이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월남에서 나무 궤짝에 둘러싸인 소포가 오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C레이션과 초콜릿, 짜기만 했던 크래커 비스킷이 마술처럼 궤짝에서 나왔습니다. 땅콩잼은 너무나 고소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음식도 있구나 감탄하면서 미국을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억은 건너뛰어 주인집 아저씨와 아줌마가 방바닥에 돈을 펼쳐 놓고 세던 것을 본 기억도 납니다. 무슨 일을 하셔서 그렇게 돈을 벌었는지는 몰랐지만 펼친 돈을 부부가 흐뭇하게 세던 모습은 문화적 충격으로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12 가구의 셋방 주인공들에게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셋방 사는 주인공들은 늘 부족한 돈을 이유로 싸웠습..

매일 에세이 2023.12.04

희망. 양귀자 장편소설. 쓰다 간행 1

시적인 것들의 변용 오늘은 옆집 냉차장수 아저씨네 부부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동아대학교를 졸업한 분이라는데 취직이 되지 않아 룸펜생활을 하시던 아저씨가 아줌마를 만나 이일 저일 하셨지만 그리 녹녹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여름 한철 장사로 리어카에 냉차통을 올려 장사를 시작했지만, 장사를 마치고 저녁이 되어 하루 냉차 판 돈을 정산할 때면 저렇게 싸움이 시작됩니다. 몇 푼 되지도 않은 돈을 술 퍼먹으면 어쩌냐는 아줌마와 남자가 한 잔 하였기로 대드는 마누라가 어딨냐, 싸움을 할 때마다 똑같은 레퍼토리입니다. 모든 이웃들은 싸움이 폭력으로 진행되지 않으면 모른 채 합니다. 하지만 폭력이 행사되는 순간 모두 아저씨네 집으로 들이닥칩니다. 그러면 싸움은 끝이 났습니다. 양귀자의 장편소설은 나성여관을 무대로 이야기..

매일 에세이 2023.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