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희망. 양귀자 장편소설. 쓰다 간행 1

무주이장 2023. 12. 4. 15:57

시적인 것들의 변용

 

 오늘은 옆집 냉차장수 아저씨네 부부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동아대학교를 졸업한 분이라는데 취직이 되지 않아 룸펜생활을 하시던 아저씨가 아줌마를 만나 이일 저일 하셨지만 그리 녹녹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여름 한철 장사로 리어카에 냉차통을 올려 장사를 시작했지만, 장사를 마치고 저녁이 되어 하루 냉차 판 돈을 정산할 때면 저렇게 싸움이 시작됩니다. 몇 푼 되지도 않은 돈을 술 퍼먹으면 어쩌냐는 아줌마와 남자가 한 잔 하였기로 대드는 마누라가 어딨냐, 싸움을 할 때마다 똑같은 레퍼토리입니다. 모든 이웃들은 싸움이 폭력으로 진행되지 않으면 모른 채 합니다. 하지만 폭력이 행사되는 순간 모두 아저씨네 집으로 들이닥칩니다. 그러면 싸움은 끝이 났습니다.

 

 양귀자의 장편소설은 나성여관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곳에는 주인집 부부와 그들의 자식 셋, 청소하고 밥 하는 뽕짝아줌마, 공사장 일을 하는 찌르레기 아저씨, 전쟁통에 잠시 피난 왔다 고립된 노인 등 1980년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같이 부대끼며 삽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삼수를 하고 있는 진우연입니다. 1980년은 저도 재수를 할 때입니다.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대학을 준비하느라 학원 종합반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진우연의 이야기를 듣다가 자꾸 13 가구가 한옥 지붕 밑에서 다닥다닥 붙어살았던 집을 기웃거렸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입니다.

 

양귀자의 글을 김훈 작가는 시적인 것들을 일상 속에서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것으로 변용한다고 했는데 어떤 뜻인지 쉽게 이해되었습니다. 우연이가 누군가를 만나면 저는 13 가구의 한편에서 살았던 어떤 분을 만났습니다. 우연이가 겪는 일은 제가 살았던 집에서도 일어났던 일 같습니다. 옆집에서 있었던 일 같기도 하고 앞집에서 일어났던 사건 같기도 합니다. 우연이의 이야기는 거의 600쪽에 육박하는 장편이지만 어느 한순간도 듣는 귀를 닫았던 적이 없습니다. 책의 글은 그림으로 나타나 잊은 듯했던 기억들을 깨웠습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