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여관 같았던 우리들의 집
월남으로 파병 간 직업군인 아저씨가 한옥 집의 주인이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월남에서 나무 궤짝에 둘러싸인 소포가 오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C레이션과 초콜릿, 짜기만 했던 크래커 비스킷이 마술처럼 궤짝에서 나왔습니다. 땅콩잼은 너무나 고소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음식도 있구나 감탄하면서 미국을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억은 건너뛰어 주인집 아저씨와 아줌마가 방바닥에 돈을 펼쳐 놓고 세던 것을 본 기억도 납니다. 무슨 일을 하셔서 그렇게 돈을 벌었는지는 몰랐지만 펼친 돈을 부부가 흐뭇하게 세던 모습은 문화적 충격으로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12 가구의 셋방 주인공들에게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셋방 사는 주인공들은 늘 부족한 돈을 이유로 싸웠습니다. 주인집 아들 중 형은 저보다 한 살 위였고 동생은 저보다 세 살 어렸습니다.
세상을 사는 사람은 누구나 고통의 총량이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주인집 부부가 가진 돈을 세며 흐뭇한 즐거움을 느꼈지만 큰 아들은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암으로 사망하였고, 둘째는 제법 방황하다 나중에 의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주인집 부부의 고통은 너무도 컸을 것입니다. 부부싸움과 가난으로 고통받았던 이웃들의 고통 총량과 비교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인근 공업고등학교를 다니던 자취생도 둘 살았습니다. 학교를 다녀오면 형이라 부르며 놀러 갔습니다. 야간을 다녔고 낮에는 도장을 파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중학교 시절, 형들에게서 배운 도장 파는 기술을 이용해 지우개에 도장을 파주고 간식을 얻고는 했습니다. 도장은 성적표에 꼭 찍어야 했던 물건이었습니다.
연탄으로 방을 데우던 시절이었고, 매년 연탄가스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등졌던 시절입니다. 저희 집 네 명의 가족 중 제가 연탄가스에 가장 민감했습니다. 실제 두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벌벌 기어 밖으로 나왔고, 토하는 것이 부끄러워 더러운 재래식 화장실로 기어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희 집 옆집, 공부 잘한다던 여학생은 연탄가스로 죽었습니다. 연탄가스로 죽은 아이에게 자살했다는 혐의를 씌운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정말인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얘기했던 냉차 장수 아저씨를 제외하고는 셋방에는 아이들이 둘 이상은 꼭 있었습니다. 산아제한 정책으로 둘만 낳자며 보건소에서는 공짜로 피임약을 제공했지만 그래도 둘만 낳으려는 며느리는 시어머니로부터 “저년 지 몸 하나 편하자고 아이를 단산했다”는 비난을 받던 시절입니다. 아들이라도 있어야 단산을 할 수가 있었고 딸만 있으면 시부모의 득달같은 비난에 어머니들은 진을 뺐던 시절입니다. 아이들이야 어른들이 어떻게 살던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었습니다. 부모들의 일상적인 싸움에도 이골이 났던 우리들은 학교를 파하면 집으로 와서 밀린 숙제를 끝내고는 주인집 아들이 갖고 있는 축구공을 중심으로 골목에 모였습니다. 양 팀 6-7명씩으로 팀이 만들어졌습니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공을 차던 시절이었습니다.
동생이 맞고 왔다고 해서 때린 녀석과 싸웠던 기억도 납니다. 키는 작지만 깡이 세서 누구도 싸우기를 주저했던 친구였습니다. ‘수정 3동’에서 이사를 왔다고 해서 별명이 ‘수정 3동’인데 10년 전쯤 연락이 왔습니다.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에게 맞아 코피를 흘렸던 기억이 나냐 물으면서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친구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키는 크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목소리가 그랬습니다. 이처럼 어린 시절 기억은 늙어서까지 선입견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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