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3

카렌 암스트롱, 신의 전쟁(성스러운 폭력의 역사) 정영목 옮김. 교양인 간행 6.

제국주의와 기독교 비잔티움, 제국의 무기가 된 신앙, 기독교 콘스탄티누스는 주교들에게 제국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새로운 권위를 부여했고, 특히 출신이 비천한 일부 사람들은 주교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오늘날 의회의 자리를 놓고 정치가들이 경쟁하는 것만큼이나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4세기 말에는 폭동이 도시 생활의 일반적 특징이 되었다. 이방 부족들이 쉴 새 없이 변경을 공격했고 시골에는 도적이 많았으며 도시에는 난민이 쏟아져 들어왔다. 인구 과밀, 질병, 실업, 세금 증가로 인해 긴장이 생기고, 이것은 종종 폭력적으로 폭발했지만 군대는 국경을 방어하는 데 필요했기 때문에 총독은 이런 봉기를 진압할 군사력이 없어 군중 통제의 책임을 주교에게 넘겼다. 시리아의 주교들은 이미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병원에서 들것..

매일 에세이 2022.09.22

오늘의 묵상 : 신앙은 욕망을 바꿉니다.

오늘의 묵상 : 신앙은 욕망을 바꿉니다. 잠언을 읽고 있습니다. 묵상을 하려고 해도 그저 좋은 말만 있어서 묵상도 심상합니다. 지난날 제가 살아온 태도가 아직도 강건합니다. 옛날 같으면 이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왜 그저 좋은 말만 나열한 이런 글을 읽고 있니?” 그렇습니다. 전 같으면 읽다가 덮을 글들입니다. 아직도 묵상이 심상한 이유입니다. 정직과 성실을 강조하는 사회는 정직과 성실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새마을 노래 가사는 우리가 잘 살지 못하기에 애타게 노래하며 소망하는 말입니다. 과거 저는 잠언이 강조하는 진리보다는 현실을 살아낼 기술을 찾아 배우고 익혔습니다. 잠언의 충고는 이 세상에는 없는 것을 애타게 간절히 있기를..

교회 예배강행 합리화 글과 같은 논리의 궤변 하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과, 같은 논리의 궤변 하나 "예배드리면 죽인다고 칼이 들어올때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나 예배모임이 칼이 되어 남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면 모이지 않는 것이 신앙입니다." “과학적으로 사자굴에 들어가면 죽을지 알면서도 풀무불에 던져지면 불타 죽을지 알면서도 그길을 선택한 그들을 믿음의 사람이라부르듯이 사람의 인식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기적인 신앙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어제도 주일 예배를 강행한 대형교회들이 욕을 들어먹어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그런 결정한 교회들에게 크리스찬으로서 존경을 표합니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과학이 아닌 일절 변함이 없는 하나님 말씀을 따르려는 Trust in God을 보기 때문입니다. 교회나 성..

매일 에세이 2020.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