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와 기독교
비잔티움, 제국의 무기가 된 신앙, 기독교
콘스탄티누스는 주교들에게 제국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새로운 권위를 부여했고, 특히 출신이 비천한 일부 사람들은 주교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오늘날 의회의 자리를 놓고 정치가들이 경쟁하는 것만큼이나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4세기 말에는 폭동이 도시 생활의 일반적 특징이 되었다. 이방 부족들이 쉴 새 없이 변경을 공격했고 시골에는 도적이 많았으며 도시에는 난민이 쏟아져 들어왔다. 인구 과밀, 질병, 실업, 세금 증가로 인해 긴장이 생기고, 이것은 종종 폭력적으로 폭발했지만 군대는 국경을 방어하는 데 필요했기 때문에 총독은 이런 봉기를 진압할 군사력이 없어 군중 통제의 책임을 주교에게 넘겼다. 시리아의 주교들은 이미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병원에서 들것에 환자를 나르고 무덤을 파는 일을 지역 수사들에게 맡기고 있었다.
테오도시우스 1세(379-395년 재위)는 자신이 공격적 형태의 기독교를 동방에서 실행에 옮기겠다고 결심했다. 테오도시우스는 입맛에 맞을 때는 로마 귀족에게 선심을 쓰는 체했지만 사실 서민에게 공감하여, 불만을 품은 시민을 그들이 사랑하는 수사를 통해 꾀어내어 권력의 기초로 삼기로 결심했다. 그는 이교도 신전을 파괴하는 일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388년 황제는 수사들에게 공격 허가를 내렸고, 수사들은 시리아의 마을 성지들을 역병처럼 공격했다. 일부 주교는 이런 문화 파괴 행위에 반대했지만 잠시뿐이었다.
이런 공격들이 성공하자 테오도시우스는 제국에서 이데올로기의 일치를 이루는 최선의 방법은 희생제를 금지하고 모든 옛 성지와 신전을 폐쇄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런 기독교적 국가 폭력에 가장 권위적인 축복을 한 사람은 북아프리카 히포의 주교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354-430)였다. 그는 호전성이 새로운 개종자들을 끌어들인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공격을 당하면 다른 쪽 뺨을 내밀라고 말했다고 해서 악행을 앞에 두고 수동적으로 굴라고 요구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하며 폭력을 악하게 만드는 것은 죽이는 행동이 아니라 그것을 촉발한 탐욕과 증오와 야심이라는 감정이고, 사랑-적의 행복에 대한 진지한 관심-의 영향을 받은 폭력은 정당하며, 교사가 학생을 위하여 매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행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개인은 설사 자기 방어를 위해 행동한다 해도 불가피하게 적에게 고통을 주려는 무절제한 욕망(리비도)을 느낄 수밖에 없는 반면, 단순하게 명령에 복종할 뿐인 직업 군인은 감정 없이 행동할 수 있다고 하여 아우구스티누스는 폭력을 개인의 범위 너머에 놓음으로써 국가에 거의 무한한 권력을 부여했다.
610년 페르시아의 코스로우 1세는 비잔티움을 공격한다. 그러나 헤라클리우스와 그의 소규모 정예 부대는 놀라운 반격을 시도하여 소아시아에서 페르시아군을 물리쳤으며, 이란고원을 습격하여 조로아스터교 귀족이 소유한 무방비 상태의 땅을 공격하고 그들의 성지를 파괴했다. 헤라클리우스의 원정은 이전 기독교 로마의 어느 전쟁보다 노골적으로 종교적인 색채를 드러냈다. 실제로 이제는 교회와 제국이 완전히 서로 얽혀 있어 콘스탄티노폴리스 포위 동안에는 기독교 자체가 공격을 당하는 것 같았다. 7세기 초에 이르면 페르시아와 비잔티움 모두 제국주의적 지배를 위한 전쟁 때문에 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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