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집 4

아침은 생각한다. 문태준 시집. 창비시선471. 4

어머니는 늘 개를 키웠습니다. 간혹 공사장에 밥을 해주기도 해서 잔반을 처리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잘 키워 동네 사람들이 찾을 때 내주려는 목적도 있었던 듯합니다. 키우는 개가 자주 바뀌었습니다. 요즘이야 시골이래도 개를 먹는 분들이 많이 줄었으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개 팔자가 상팔자가 된 세월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개를 대충 키우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읽은 녀석들은 늘 어머니 곁을 지켰습니다. 사춘기부터 어머니와 자주 다투던 저 때문에 마음이 상한 어머니는 말수 적은 남편에게 하소연 못하고, 냉랭한 관계의 시어머니에게 마음을 열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곁에 머무는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따뜻한 개의 체온으로 언 마음을 녹였습니다. 어머니가 개를 좋아하는 마음은 그대로 유전되었습니..

매일 에세이 2024.02.21

아침은 생각한다. 문태준 시집. 창비시선471. 3

자연과 함께 살기를 바라고 자연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그래서 밭에 쪼그려 앉아 일도 하게 됩니다. 시선이 하늘을 향하기도 하고, 마음이 길을 걷는 행인에게도 가지만 시인은 땅에게 말을 걸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듣게 되는 말이 시가 되었습니다. 미련스럽게 지난여름 낮에 풀을 뽑고 있는 내게 지나가던 그 사람이 말했네 -그걸 언제 다 뽑겠다고 앉아 있어요? 미련스럽게. 풀 못 이겨요. 그리고 가을이 물러서는 오늘 낮에 풀을 뽑는 내게 그 사 람은 말했네 -그걸 왜 뽑고 있어요? 미련스럽게. 곧 말라 죽을 풀인데. 조용히 움직였지만 실은 발랄한 풀과 오늘에는 시름시름 앓는 풀이 그 말을 나와 함께 들었네 잠시 손을 놓고 서로 어찌할 바를 몰라서. 미련스럽게 같이 술 한잔하자는 사람에게 무주를 간다며 피하면..

매일 에세이 2024.02.21

아침은 생각한다. 문태준 시집. 창비시선471. 2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문해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시가 어려웠던 이유는 시인의 마음을 읽지 못한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인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태어날 때부터 본시 결함이 있기도 했지만 세상 풍파에 마음이 닳아 정교한 마음을 수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동안 고장 난 마음을 수리해 제 기능을 회복한 것도 아닐 텐데 시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시인의 마력입니다. 그때에 나는 아가를 안으면 내 앞가슴에서 방울 소리가 났다 밭에 가 자두나무 아래에 홀로 서면 한알의 잘 익은 자두가 되었다 마을로 돌아가려 언덕을 넘을 때에는 구르는 바퀴가 되었다 폭풍은 지나가며 하늘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너의 무거운 근심으로 나는 네가 되었다 어머니의 ..

매일 에세이 2024.02.21

아침은 생각한다. 문태준 시집. 창비시선471. 1

서정시인, 문태준 시인을 만났습니다. 짧은 시 구절에서 자연과 동화된 듯한 시인, 자연을 읽어주는 시인을 만났습니다. 그런 마음만 읽은 것도 아닙니다. 시인 곁의 이웃들에 대한 선한 마음을 보았습니다. 이를 “타자에 대한 연민과 돌봄의 마음”이라고 문학평론가 이경수는 설명합니다. 마음 따뜻하게 하는 시집입니다. 밥값 허름한 식당에서 국밥을 한술 막 뜨고 있을 때 그이가 들어섰다 나는 그이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수레에 빈 병과 폐지 등속을 싣고 절룩거리며 오는 그이를 늦은 밤 좁은 골목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이가 식당 한편 벽에 걸린 달력의 28일을 오른손으로 연거푸 짚어 보였다 무슨 말인가를 크게 했으나 나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식당의 여주인은 조금도 언짢아하는 기색이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짧은..

매일 에세이 2024.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