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시집 4

붉은 빛이 여전합니까. 손택수 시집. 창비시선440. 4

신록의 말 고등학교 시절의 일입니다. 봄볕이 너무 좋은 날이었습니다. 어떻게 시간이 났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운동장 낮은 콘크리트 스탠드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햇볕이 좋은지 모두가 교복의 목깃을 조이든 후크를 풀고 윗 단추 하나도 풀고는 갑갑한 가슴에 봄볕을 모았습니다. 겨울을 이기고 난 새싹처럼 한 녀석이 말을 했습니다. “이런 날씨에 놀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같이 웃고 동조를 했습니다. 그러나 놀러 나간 친구는 한 명뿐이었습니다. 자유를 찾아 떠난 그 친구는 다음날 담임선생님에게 많이 맞았습니다. 어디 갔냐는 선생의 질문에 그 아이는 묵묵부답한 채 맞기만 했습니다. 제가 놀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라는 말을 기억한 것은 대학시절이었습니다. 교정을 흐르는..

매일 에세이 2024.01.01

붉은 빛이 여전합니까. 손택수 시집. 창비시선440. 3

행복에 대한 저항시 술을 끊으면 세상의 간판 절반이 술집 간판이란 것을 알 게 됩니다. 내가 저 절반의 간판을 단 곳에서 접대를 핑계 삼아 술을 마셨고 술이 좋아 술을 마셨습니다. 술은 제 간에 하얗게 기록을 쌓았습니다. 이건 그때 얼마를 주고 마신 술이고 저건 네가 얻어먹고는 후회했던 술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간의 기록은 술에 대한 저항의 뜻으로 기록을 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순순히 술 흐르는 대로 살기를 거부하며 남긴 저항시일지도 모릅니다. 김태형의 행복론을 읽으면서 시간 되고 건강되면 마셨던 술의 개념을 개념치 않았듯이 행복에 대해서도 이러면 이런가 보다, 저러면 저런가 보다 그래서 행복하고 저래서 불행했던가보다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항복하여 살았던 시간들..

매일 에세이 2024.01.01

붉은 빛이 여전합니까. 손택수 시집. 창비시선440. 2

망원동 많은 세월을 살아낸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 특징들 때문에 세상이 어려워진다며 사라져 주길 바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부머리가 있는 사람들이 책도 내고 입도 열어 수많은 사람들의 개개의 특성을 일반화하고는 그들 때문에 사회의 화합이 어렵고 협의를 통한 콘센서스 형성이 불가능하다고도 합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좌우 두 쪽으로 쪼개는 것도 일반화의 오류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 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스트레스의 연속입니다. 노인이 되어 “지금 가장 최대의 비극은 노인네들이 너무 오래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빨리빨리 돌아가셔라”라는 말을 들으면 회한이 들까요, 아니면 화가 날까요, 묻는 것이 어리석을까요? 나이 든 지금까지 그들이 살아오면서 받았던 수모와 모멸감이 어디 한두 번일..

매일 에세이 2024.01.01

붉은 빛이 여전합니까. 손택수 시집. 창비시선440. 1

인위적으로 정한 나이테는 달력에서만 보입니다. 그 달력도 떼어지면 사라지는 듯하지만 기록이 있어 세월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시인의 시도 세월을 따라 변하겠지요. 금년에도 시집을 읽으며 섬세함을 배우고 세상을 읽는 따뜻함을 계속 배우고 싶습니다. 이번 시집은 손택수 시인의 시집입니다. 송종원의 해설에 따르면 “시를 말하면 우울감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시는 사실 반쪽짜리 시일뿐이다. 손택수의 시처럼 삶의 기쁨과 경이를 외면하지 않고 나아가는 감각이야말로 시가 꾸는 꿈이고 실제이다.” (117쪽) 시를 읽으면서 우울한 마음보다 기쁨과 경이를 느끼는 시간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먼 곳이 있는 사람 언제부턴가 걷는 것이 편하게 되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카드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인식한 후 사람들과 어깨를 ..

매일 에세이 2024.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