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4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소설. 문학동네 간행 4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라틴어로 된 학명을 줄줄 외우시는 보건소장님을 지켜본 아이의 추억담입니다. 어느 먼 아프리카의 오지에 있는 마을 같은 80번지 마을에 장티푸스가 퍼집니다. 하수도 시설도 없는 마을이라 조금 큰 도시라면 여기저기 한 곳 이상에는 있는 같은 이름을 가진 마을 ‘똥골’같이 위생상태가 좋지 못한 마을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80번지 대장쥐가 장티푸스를 퍼뜨린 원흉이라며 쥐를 잡아 하수구 구정물이 모이는 개천에 버립니다. 복개천 아래로 찾아간 보건소장님은 장티푸스균을 퍼뜨려 쥐를 박멸하려던 계획이 틀어져 쥐는 장티푸스에 면역을 가졌다며 장티푸스를 옮기는 종은 이 세상에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밖에 없다고 주민들에게 설명합니다. 신..

매일 에세이 2024.03.27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소설. 문학동네 간행 3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와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는 조카가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와 함께 멧돼지 사냥을 간 경험담입니다. 삼촌과 조카가 나누는 대화가 격의 없어 좋습니다. 되바라진 조카의 대답에 성질을 낼 법도 한데 삼촌도 그의 친한 도라꾸 아저씨도 쉽게 용인합니다. 나이가 멀다고 친하지 않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저에게는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삼촌은 없지만, 그리고 내놓고 바람을 피워 두 집 살림을 한 삼촌은 없지만(삼촌의 사생활을 어떻게 다 알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믿습니다) 할머니를 꼬드겨 하나 밖에 없는 고구마 밭을 잡혀 돈을 챙겨간 삼촌은 있습니다. 돌아가셨습니다. 살림까지 차린 삼촌이 여자와 헤어지고는 죽겠다며 먹은 수면제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으며 앞에서 씩씩..

매일 에세이 2024.03.27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소설. 문학동네 간행 2

뉴욕제과점과 첫사랑 그리고 똥개는 안 올지도 모른다 가겟방이라는 말이 있던 시절입니다. 가게라도 얻으려면 집 보증금을 빼야 했습니다. 추가로, 덧붙여, 하나 더, 별도로 얻을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가게가 빵집이라도 되면 거기에서 책보 들고 나오는 아이는 보기 좋습니다. 술을 파는 가게에서 교복 입고 나오는 언니라면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미장원에서 나오기 싫어 사주경계 후 나오는 남학생의 마음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뉴욕에는 절대로 없을 법한 ‘뉴욕제과점’이 김천 어디쯤 있다고 해서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김천역을 나와 광장이라고 할 수도 없는 좁은 마당을 나와 뉴욕제과점이 있던 자리의 국밥집을 찾아가는 작가의 발길이 어딘가 익숙합니다. 김천역을 지나간 경험이 있어 그랬던 모양입니다. 김천역 옆 ..

매일 에세이 2024.03.27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소설. 문학동네 간행 1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와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 작가는 템즈 강변에서 뭉게구름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책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뭉게구름 같은 것이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 좋겠다고 합니다. 모두 9편의 작품은 저를 어린 시절로 데려갔습니다. 토끼굴로 들어간 엘리스처럼 잊혔던 세상, 없는 줄 알았던 세상을 마음껏 쏘다녔습니다. 그 세상의 사람들은 무조건 나에게 친절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질게 나를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맹숭맹숭한 세상으로 기억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슴이 콩당콩당 뛰고, 얼굴이 괴란쩍기도 했지만 되돌아 간 세상은 지금의 나를 만드느라 부산스러웠고 뜨거웠습니다. 13 가구가 들었던 기와지붕을 같이 한 집입니다. 빙 ..

매일 에세이 2024.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