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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스테인 1. 필립 로스 장편소설. 박범수 옮김. 문학동네세계문학전집19

전집에서 고른 책을 읽은 것이 아주 오래전입니다. 아버지께서 계몽사에서 발행했던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없는 돈을 털어 책을 좋아하는 제게 월부로 사서 주셨습니다. 모두 50권으로 된 전집이었습니다. 그때가 중1이었는데, 다 읽은 책들을 버리지 못해 고등학교까지 가지고 있다가 외삼촌이 어린 조카에게 주고 싶다고 해서 삼촌이 갖고 계시던 세계명작전집과 바꿨습니다. 삼촌과 교환한 세계명작전집은 아직도 제 서가에 꽂혀 있습니다. 종이를 아래위 두 칸에 나눠 세로로 인쇄된 두껍고 오래된 책입니다. 두 전집 모두 다 읽었습니다. 제가 그 뒤로 ‘세계명작’을 보지 않은 것은 두 전집 때문입니다. 그 뒤로도 간혹 단행본으로 출간된 두 권(카라마조프의 형제들), 혹은 세 권짜리(전쟁과 평화) 소설을 읽기도 했지만 드물었..

매일 에세이 2025.04.01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칼 세이건 강연집. 앤 드루얀 편집. 박중서옮김. 홍승수 감수

아이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아내가 가고 아내를 따라 제가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스스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신에게 의지한다는 것이 불편했던 젊은 시절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숱한 세상사를 만납니다. 운칠기삼이 단지 노름판의 격언이 아니라면 신의 도움을 받아 사는 것이 비난받을 일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당신을 준비하게 하셨다”는 순장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죽음의 문턱일 수도 있었던 삶의 고비가 떠올랐습니다. 지금의 내가 존재하지 못했거나, 지금의 나조차도 될 수 없었을 가능성의 고비가 새삼 떠올랐습니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동생이 갑자기 그리워지기도 했습니다. 믿음은 믿음을 기반으로 큽..

매일 에세이 2025.03.31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장편소설. 나무옆의자 간행

한길 건너 편의점이 있습니다. 구멍가게라 불리던 아주머니 할머니가 지키던 가게들이 모두 대기업이 운영하는 편의점의 간판을 걸고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노름판에서는 돈 많은 놈이 이깁니다. 구멍가게가 견딜 재간이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는 대한민국에는 편의점이 말 그대로 편의를 제공하며 즐비합니다. 서로 가까이 붙어 경쟁하는 편의점이 우리를 편하게 해 줄 것입니다. 편해야 할 편의점이 “불편”하다니 읽기가 불편합니다. 그래서 ‘편한 편의점’부터 먼저 얘기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책이 얘기하는 “불편한 편의점”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편의점에는 손님들이 찾는 상품을 모두 갖춰야 합니다. 도시락을 예로 들면 박찬호 도시락도 있어야 하고 산해진미 도시락도 진열되어 손님들이 자유롭게 선택..

매일 에세이 2025.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