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954년의 실험을 정리하여 1956년 간행된 책입니다. 이렇게 오래된 책이었다면 읽지 않았을 텐데… 읽었습니다. 요점은 간단합니다. 예언을 믿는 사람들이 믿었던 예언이 사실이 아님을 알았을 때 그들은 어떻게 행동을 하는가? 믿었던 예언을 폐기하는가? 아니면 더욱더 예언에 매달리게 되는가? 그들의 실험은 70년 전에 있었지만 오늘의 이야기로 각색을 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는 왕이 된다는 예언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한두 사람의 예언이 아니었습니다. 천공이라는 자칭 신선도 그랬고, 건진이라는 중늙은이 점쟁이도 그랬습니다.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 경선과정을 TV에서 생중계하는 날, 그의 말에 따르면 아침 식전에 동네 할머니가 그의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써주었습니다. 아마도 그의 발바닥에도 그의 팬티에도 임금 왕자가 그려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이며 1954년의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가설을 세웠습니다. 다섯 가지 조건이 만족되면 “자신의 믿음이 명백한 사실에 의해 반증되었을 때 그 믿음에 대한 열정이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가설입니다. 첫째 조건은 “어떤 사람이 매우 깊은 확신을 가지고 무언가를 믿고 있어야 하며 그 믿음이 모종의 행동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입니다.
그는 건진과 천공, 그리고 동네 할머니의 도움으로 공당의 대통령 후보가 됩니다. 그는 법사 명태의 도움으로 낙선의 두려움과 불안을 다스립니다. 외상으로 명태 법사에게 여론 조사를 의뢰하고 법사에게 줄 돈이 아깝지 않다고 평소에는 하지 못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몇 억의 돈쯤 자신의 주위에 몰려드는 사람들 중 누군가 대신 주거나 대통령 용돈인 특활비로 줄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는 국회의원 자리 하나 공천해 주었더니 명태 법사가 평생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돈이 굳었습니다.
저자들의 두 번째 조건은 그가 그 믿음을 위해 자신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확실하게 투자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명태에게 여론조사비용을 투자한 것은 그가 평소 그의 재산을 금이야 옥이야 아꼈던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투자였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하늘이 내린 대통령이 된다고 했습니다. 고작 5년짜리 대통령이 아니라 통일 대통령으로 영원히 빛날 대통령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이제 시작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셋째, 그 믿음은 충분히 구체적이어야 하고 현실 세계와 충분히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반증”이 가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내의 도움으로 새로운 영매들을 만납니다.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할 결심을 굳혔더니, 별을 달았던 영매가 눈앞에 돌연히 나타났습니다. 영매, 상원은 반국가세력들을 모두 잡아들여 백령도 앞바다에 수장을 시키겠다며 작전계획을 설명했습니다. 그의 눈빛에 비릿한 살기가 광채를 띄었습니다.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불구덩이에 떨어뜨리려면 화요일이 좋다는 괘도 나왔습니다. 대통령이 된 1,000일째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천황처럼 영원한 대통령으로 8,000년을 해먹을 생각입니다. 다음은 아내가 하고, 처가 식구들이 차례로 해먹으면 될 일입니다. 작전명은 ‘충성 8,000’이라고 영매 상원이 동료 무속인들의 도움을 받아 정했습니다. 드디어 거사일 거사시간 요이 땅 시작했습니다… 만, 국회에 시민들이 모이고 의원들이 바람처럼 들이닥쳐 깽판을 놓았습니다.
이 조건은 가설의 넷째 조건으로 그 믿음에 대해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반증”이 될 사건이 발생해야 하고, 그 믿음을 믿고 투자 행동을 했던 사람이 이를 (즉 자신의 믿음을 확실하게 반박하는 증거가 나타났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이럴 경우 기존의 믿음이 철회되거나 기존의 믿음이 오히려 강화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추가적인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이 가설의 마지막 다섯 번째 조건입니다.
그는 체포를 당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형극 같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가 체포되어 집밖으로 끌려 나올 때 길가에는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길 건너 늙은이들의 지지 외에도 그들과 마주 보는 곳의 젊은이들도 그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 나는 죽지 않았다’ 그는 힘을 내기로 합니다. 성명도 내고 나를 위해 싸워달라고 독전도 하기로 합니다. 비록 좁은 감방에 있지만 나의 생각을 전할 전령들이 수시로 들락거립니다. 나의 말은 곧 신의 말이 되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법원이 공격을 당했고, 곧 헌법재판소도 함락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내년 꽃 피는 봄이 오면 대운이 터질 것이라는 영매와 법사와 거사들의 예언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립니다.
저자들이 말하는 다섯째 조건은 “그 믿음을 가진 사람이 사회적 지지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있어야 한다.”입니다. “사회적 지지와 지원”은 전투에서 피폐해진 군인들의 정신적 상해를 줄이는 방법으로 좋다는 것을 ‘살인의 심리학’에서도 봤지만, 예언에 빠져 많은 투자를 하고 꿈에 부풀었다가 반증 사건을 겪고도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 숱한 이들이 주술적, 미신적, 광신적 행동을 보이게도 하는 자양분이 되는 조건입니다.
모두 381쪽에 이르는 책입니다. 저자들의 주장은 초기 50쪽 내에 정리가 되어 있고, 나머지는 실험 그룹에 끼어들어 관찰하는 이야기입니다. 기념식을 하면 식순 중에 경과보고라는 게 있지요? 그쯤 이해하고 보시면 됩니다만 시간이 부족하신 분은 매일 뉴스 몇 꼭지만 보시면 됩니다. 1954년의 실험은 2025년 2월 우리나라에서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소수의 관찰자가 아닌 모든 국민이 관찰자로서 참여가 가능합니다. 관찰하기에 힘은 듭니다.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한 미니시리즈를 보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지겹지는 않습니다. 느리지만 스토리가 매일 조금씩 진행되는 것은 결국 결말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무대 장치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이 틀렸어도 믿음은 깨지지 않는다.’ 깨지지 않는 것은 믿음이지만 믿었던 사람은 이번에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 같습니다. 그래야 사람이 믿고 기댈 데가 있지 않겠습니까? 헌법과 법률이라는 믿음은 예언을 하지 않습니다. 현실을 단단히 지키기만 합니다. 그래서 믿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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