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오늘의 역사 역사의 오늘.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남진희 옮김. 버터북숲 간행 1

무주이장 2025. 2. 7. 17:06

  역사는 오늘의 기록입니다. 오늘의 기록이 모여 역사가 됩니다. 이 책은 1 1일부터 12 31일까지 저자가 기록한 역사입니다. 역사에서 오늘을 기억한 책입니다. 저자는 승자의 역사를 기록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가 얘기하는 역사를 읽은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승자의 기록인 역사에 익숙한 탓이지요.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오랜만에 듣는 도시입니다)에서 태어나 우루과이 쿠데타로 투옥되었다가 아르헨티나로 갔고 아르헨티나에서도 쿠데타가 발생하자 다시 에스파냐로 망명했다고 합니다.

 

  1985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귀국한 갈레아노가 2012(72)에 쓴, 한 권으로 정리한 인류의 달력이라고 소개하는 책입니다. 그의 역사관이 짐작됩니다. 그는 부조리를 보는 예리한 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사 일력 아래에 주석을 붙여 설명이 친절합니다. 사람 사는 곳이 한결같이 부조리하고 몹쓸 놈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어디선가 누군가 소금 같은 존재가 있어 세상이 굴러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몇몇 일력을 소개합니다.

 

1 13일 포효하는 대지

2010년 지진은 아이티의 상당 부분을 집어삼켰고, 2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다음 날 미국의 복음 선교 텔레비전 목사인 팻 로버트슨이 이 참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많은 영혼의 목자인 그가 아이티의 흑인들은 독립을 요구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번 지진은 아이티를 프랑스에서 독립시킨 악마가 대가를 요구한 것이라는 게 로버트슨 목사의 주장이다. (1 팻 로버트슨 목사는 이전에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의 낙태 정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2 우리나라 세계로 교회 손현보 목사는 이재명이 죽어야 대한민국이 산다며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구호를 외쳤다. 3 이 세계에는 악과 고통이 있고, 거기 희생되는 무고한 사람들이 있다. 신이 선하지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그는 무능한 존재이다. 신이 선하지 않고 다만 전능하며 그것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는 악한 존재이다. 신이 선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면 그를 신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러므로 선하고 전능한 신이란 성립 불가능한 오류다-희랍어 시간 43.)

 

2 12일 모유 수유의 날

쓰촨성 청두역, 물결 모양의 지붕 아래 젊은 중국 여인 수백 명이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중략) 모두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산모였다. 그녀들은 베이징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베이징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들에게 젖을 줄 것이다. 젖소 역할을 할 이 여인들은 좋은 월급과 좋은 식사를 제공받을 것이다. 그동안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진 쓰촨성에 있는 아이들은 분유를 먹고 자랄 것이다. 모두 자식 때문이라고, 자식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그들은 이야기했다.

 

2 13일 위험한 놀이

2008년 멕시코의 과달라하라 시 교외에서 뛰어놀던 미겔 로페스로차는 발을 헛디뎌 산티아고 강에 빠졌다. 미겔은 여덟 살이었다. 미겔은 물에 빠져 죽지 않았다. 미겔은 독극물에 중독되어 죽었다. 강물에는 아벤티스, 바이엘, 네슬레, IBM, 듀폰, 제록스, 유나이니트 플라스틱, 셀라니즈 등의 다국적 기업이 강에 투척한 비소, 황화수소, 수은, 크롬, , 퓨란 등이 들어 있었다. 기업들의 본국에서는 이 같은 방류 행위가 금지되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註 미겔의 부모는 오염물질을 배출한 공장과 이를 묵인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2022 2 14일 멕시코 누에보레온 주 법원은 부모에게 500만 페소(한화로 약 6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으나, 기업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2 14일 빼앗긴 아이들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가 한창일 때, 반체제 인사들의 아이는 전쟁의 전리품이었다. 군부독재가 진행되던 몇 년 동안 500명 이상의 아이를 훔쳤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 민주 정부는 더 오랫동안, 법의 비호와 사람들의 박수갈채까지 받으며 이보다 더 많은 아이를 훔쳤다. 2008년 캐빈 러드 오스트레일리아 수상은 한 세기 이상 아이들을 강제로 빼앗겨온 원주민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정부 기관과 기독교 교회는 아이들을 가난과 범죄에서 구출해 교화시키고, 야만적인 삶의 방식으로부터 분리한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납치하여 백인 가정에 나눠주었다. 그들은 흑인들을 백인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이야기했다. ( 190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10만여 명의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강제로 분리되었다. 이들은 원주민 언어와 문화를 금지당했고 가족과의 연락조차 금지되었다. 많은 아이들이 학대당했으며 성인이 된 후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채 외롭게 살았다. 이 야만적인 정책과 그 희생자들을 일컬어 빼앗긴 세대(Stolen Generation)라 부른다.)

 

2 15일 또 다른 도둑맞은 아이들

마르크스주의는 최악의 정신질환이다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이 다스리던 에스파냐의 최고의 정신과 의사 안토니오 나헤라 대령은 이렇게 선언했다. 그는 감옥에 갇힌 공화파 젊은 엄마들을 연구해 이들에게 범죄 본능이 있음을 증명하였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병적인 타락과 엄마에게 물려받은 범죄 인자로 인해 위협받는 이베리아의 순수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갓 태어난 신생아 수천 명과 젖먹이 아이들, 그리고 공화파 부모의 자식들을 납치해 십자가와 칼에 헌신적인 자세를 보이는 가정에 넘겨주었다. 이 아이들은 누구였을까? 몇 년 후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프랑코 독재 정부는 서류를 위조하여 자신들의 흔적을 지웠다. 그리고 잊으라고 명령했다. 아이들을 훔쳤을 뿐만 아니라 기억까지 훔친 것이다. (1 2018년 에스파냐 정부는 납치된 아이들에 대한 조사를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중략) 납치된 아이들의 수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1만 명에서 3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납치된 아이들은 기록이 말소된 탓에 프랑코 독재 정권이 끝난 후에도 부모를 찾지 못한 채 살아야 했다. 2 우리나라 같았으면 유전자 조사를 통해 에스파냐 보다는 더 많은 아이들이 부모와 만났을 것이라고 믿는다.)

 

2 27일 은행이 망하는 날

1995년 오늘,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상업은행 베어링스은행이 파산했다. 일주일 후 단돈 1파운드에 팔렸다. 은행의 자립과 외채 모두 라틴아메리카에서 시작되었다. (후략) (1 베어링스 은행의 파산은 28세의 젊은 딜러가 저지른 한순간의 실수로 일어났다. 닉 리슨이라는 딜러가 주가지수선물에서 5억 파운드(7 9천만 달러)의 평가손을 내자, 베어링스 은행은 영국 정부에 관리를 의뢰하고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은행의 자산은 대부분 네덜란드의 금융보험그룹 ING에 매각되었다. 2 제가 34살 때 베어링스은행의 파산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전설은 우리나라에서도 사라졌다. 1997 IMF 금융위기 후 1998 6월 동화은행, 동남은행, 대동은행, 경기은행, 충청은행 등이 퇴출당했다. 상업은행, 한일은행은 우리은행으로 합병되어 사라졌고, 제일은행은 뉴브리지캐피털과 스탠다드차타드에 연이어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SC제일은행이라는 상호의 외국계은행이 됐다. 2002년 말 서울은행 역시 하나은행에 흡수됐고, 조흥은행마저 신한은행에 주인 자리를 내주었다. 인사적체를 피해 새로운 은행으로 이직을 했던 외환은행의 많은 선배들이 이때 직장을 잃었다. 3 아파트 불패 신화도 이때 된서리를 맞았다. 2025년 아파트 불패 신화는 어떻게 될까? 부침이 있는 부동산 시장을 기대하기에 제반 여건이 만만치 않다. 집이 투기대상이 되지 않을 때가 멀지 않았다는 생각은 아직도 많은 반대의견에 직면하고 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