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을 가면 꼭 볼 수 있는 광경이 있습니다. 가족이 외식을 합니다. 부부가 곁에 앉고 맞은편에 아이(들)가 있습니다. 아이의 눈은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을 향하고 있습니다. 미동도 없습니다. 아이 같지 않습니다. 지나가면서 무얼 보고 있나 보면 ‘뽀로로’ '캐치! 티니핑' 동영상입니다. 맞은편 부부는 작은 소리로 대화를 하며 방해받지 않고 식사를 합니다.
제법 오래전 식당 풍경은 이러지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식사하러 온 가족은 아이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부부가 한 사람씩 번갈아 아이를 돌보느라 같이 테이블에 앉지도 못합니다. 밥을 먹은 아이들은 식당을 뛰어다니기 일쑤였습니다. 옆 테이블에서 아이를 질책하면 어떤 엄마는 왜 아이를 야단치느냐, 왜 아이를 기죽이냐 오히려 달려들어 소란해집니다. 아이의 기를 살리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유행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휩쓸던 때 자주 보았던 풍경입니다(그때 그 교육학 전공의 교수는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방송이 소비하면 모두가 재가 되는 듯합니다).
책의 제목이 말하는 불안 세대는 2009년부터 불붙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영향을 대대적으로 받은 세대를 말합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1년에서 1995년에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고 합니다 Z세대는 1996년 이후 태어난 세대입니다. 이 책은 Z세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주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결국 Z세대가 불안 세대라는 말입니다.
Z세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돌려 흥미진진하고 중독성이 강하고 불안정하며, 그리고 아동과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대체 우주로 오라고 유혹하는 ‘포털’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면서 사춘기를 보내는 역사상 최초의 세대가 되었습니다. (22쪽) Z세대는 급진적인 새로운 성장 방식, 즉 인류가 진화한 소규모 공동체의 현실 세계 상호 작용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에서 성장하는 방식을 시험하는 대상이며 이것을 저자는 ‘아동기 대 재편’이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이것은 마치 이들이 화성에서 성장하는 첫 세대가 된 것과 비슷하다는 주장입니다. (23쪽)
저자는 1980년대를 ‘놀이 기반 아동기’에서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로 전환이 시작된 시기로 간주하자고 제안하면서 이 전환은 대다수 청소년이 스마트폰을 소유한 2010년대 중반에 가서야 완료되었다고 설명합니다. 1996년 이후에 태어난 아동이 불안 세대가 된 주요 원인을 저자는 현실 세계의 과잉보호와 가상 세계의 과소 보호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430여 쪽에 걸쳐 줄기차게 주장합니다. 불안 세대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영적 고양을 주장할 때에는 설득력이 떨어지기도 했지만(영적 퇴화는 현대 사회의 특징으로 청소년에게 한정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 존경할 만한 영적 대상이 사라진 것은 우리가 만든 결과이며 회복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소셜 미디어에 대한 제도적 법적 규제를 주장하고 부모들이 일치단결하여 아이들에게서 스마트폰의 사용 시기를 늦추고 사용 시간을 줄이자는 주장은 비록 비현실적이지만 방법 중 하나인 것은 설득이 되었습니다.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한 청소년의 사회성 결핍이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은 단순미가 있는 명쾌한 주장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아이들에게 언제 스마트폰을 줄 것인가, 하루 몇 시간을 사용하게 할 것인가는 많은 부모들이 고민을 하는 과제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부모 단독의 결정이 현실적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듭니다. 주위의 압력에 노출된 부모는 아이들의 요청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이를 위협하는 주변 환경의 불안은 스마트폰의 기능을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저는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스마트폰의 사용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만 그러려면 부모가 사회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줄여주어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기본 소득, 유급 육아 휴가 등 기본적인 생활(아이와 함께 해도 생활이 가능한)을 보장할 사회보장책에 대해 반대하기 어렵습니다.
이 책의 주장과는 달리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에서는 다른 주장도 합니다. 길지만 인용합니다. “여러 학술 논문에서 ‘아이들이 게임을 많이 하면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폭력성이 강해진다’는 결과를 반복적으로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에도 논란이 있습니다. 어릴 때 게임을 했던 아이들이 20대가 넘으면 대부분 폭력성이 보통 사람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아집니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폭력적인 성향이 높게 나타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효과를 미치는 것 같지는 않다는 주장도 가능합니다. 게임에 빠진 아이들은 다른 부분에서도 일반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것도 대부분 간과되지요. 다시 말해, 스마트기기 사용이 무조건 나쁘다고 하기에는 아직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제가 보기엔 좀 더 사려 깊게 실험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게임은 손쉽고 빠르게 작은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기제라서, 보다 폭넓고 풍성한 그리고 다양한 즐거움을 주기 위한 노력을 우리 어른들이 해야겠지요.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우울하다’는 연구결과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중략) ‘나 너무 행복해!’라는 메시지를 인스타그램에서 받고, ‘이 사람 정말 나쁜 놈!’이라는 정보를 뉴스와 댓글창에서 읽다보니 인터넷을 한참 보다가 내 삶을 되돌아보면 더 우울해지고 세상이 살 만한 곳으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열두 발자국 243~244쪽) 정재승의 노력은 규제쪽은 아닌 듯합니다.
아는 어린이집 보육교사에게 물었습니다. “어느 쪽 주장이 맞을 것 같으냐?” 저의 질문에 단호하게 말합니다. “나는 직접 봤어요. 정상적인 아이였는데, 사람과의 접촉을 거부하고 스마트폰만을 보려고 해서 부모와의 대화도 불가능할 정도가 되더니 결국 자폐 증세를 보였어요.” 이 교사의 말이 의학적으로 얼마나 정확한지 알 수는 없지만 사회성을 잃고 사람을 배척하며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아이들에게 스마트폰만을 보게 만든 사회적 경제적 개인적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의 외과적 처방에 불만입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아프리카 속담이라지요. 도시화가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더욱 어려운 것이 아이 기르기인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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