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살인의 심리학. 데이브 그로스먼 지음. 이동훈 옮김. 열린책들 간행

무주이장 2025. 2. 4. 13:57

 전쟁 영화를 좋아합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도입부 상륙작전의 전투 장면은 사실감으로 인하여 화면 속에 들어가 군인이 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전쟁의 살벌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독일군의 기관총 사격에 한자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전사하는 군인들을 보며 안타까웠습니다. 마침내 적의 진지를 통과하여 이번에는 독일군을 사살하는 미군들의 전투 장면을 보며 살인의 익명성에 전율했습니다. 죽은 전우를 생각하면 손 들고 항복하는 적군을 살려둘 생각이 없겠지요. 보는 족족 사살합니다. 살인기계 같습니다. 영화와 달리 저자는 사이코패스로 분류되는 2%의 군인만이 살인에 주저하지 않고 98%의 군인들은 전투에서 살인을 주저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전투를 위해 존재하는 직업군이 군인입니다. 적을 보면 먼저 쏘아야 자신이 살 확률이 높습니다. 군인의 덕목은 정확한 사격술입니다. 이를 위해 훈련을 합니다. 전쟁에 참가하면 살인무기가 되어야 합니다. 살인이 직업인 군인들은 살인에 특화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는 주장입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적군 1명을 사살하는데 소요된 탄알은 5만 발이었다고 합니다. 훈련을 하고 전투에 투입된 군인들의 결과라고 믿기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저자는 인간은 동족인 인간을 살해하는 것에 타고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거부감은 본능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고 보니 동족 간에는 동물의 왕국에서도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서나 영역 다툼에서도 치명상을 입을 때까지 죽자 살자 싸우지는 않았다는 기억이 납니다.

 

 싸우거나 도주한다(싸움-도주 모델)는 이분법적인 도식은 생명체가 동종이 아니라 이종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는 적절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동종으로부터 공격받는 경우를 고려할 때, 생명체가 선택할 수 있는 반응은 보다 확장되어 대치와 복종을 포함하게 된다. 이처럼 동물계에서의 동종 간 반응 패턴(즉 싸움, 도주, 대치, 복종)을 인간의 전쟁에 적용하겠다는 생각은 내가 아는 한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39~40) “공격성은 존재한다. 경쟁도 존재한다. 하지만 실제 폭력은 아주 경미한 수준으로 일어난다.” 이 주장을 그는 477쪽에 걸쳐 많은 사례를 통하여 주장합니다.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많은 생각들이 수정이 됩니다. 수정이 될수록 인간성이 회복되는 듯하여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자는 군인들이 정신적 상해를 입는 중대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적을 죽여야 하는 의무와 그 결과 치르게 되는 죄책감과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라고 설명합니다. 군인은 죽여도 저주받고(군인의 의무와 살인의 거부감 때문) 죽이지 않아도 저주받습니다(동료를 보호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인류사에 즐비한 전쟁의 경험을 분석하며 저자는 살인의 심리를 분석하며 인간의 본능을 이해하고, 본능에 기초하여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며, 어떻게 군인들을 훈련시키고, 전투에 참여한 군인들의 정신적 상해를 줄이기 위해서 어떤 피해저감 방안을 시행하여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1:1의 전투상황을 회피하고 포격이나 폭격 등 원거리 사격으로 적을 죽이는 행위가 거부감이 적다고 설명합니다. 마치 게임 같은 전투행위를 현대전에서 자주 봅니다. 기술의 발달이 원인이지만 심리적 원인에 대한 대처방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착안이 새롭습니다. 또한 체계적인 둔감화라는 심리적 방법을 기초군사훈련에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폭력 영화에 노출된 청소년들이 폭력에 둔감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전투에 참여했던 군인들의 정신적 상해를 줄이는 방법은 부대 단위로 귀국하는 방법이 효율적이라고 합니다. 2차 대전 후 귀국선을 타고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배안에서 부대원들끼리 서로의 경험을 얘기하고 아픔을 나누면서 서로가 지원하고 지지한다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 정신적 상해를 줄이는 좋은 방법이 되었다고 합니다. 베트남 참전 용사들은 개별적으로 입대하고 개별적으로 귀국하였는데 이들의 정신적 상해가 유독 심하다고 합니다. 더러운 전쟁이란 인식이 퍼져 참전 용사들에 대한 존경 대신 조롱과 비난이 더해진 것이 더욱 정신적 상해를 키웠다는 설명에 무척 공감이 되었습니다. 동족의 지원과 지지는 어려움과 부조리를 극복하는데 최고의 약인 게 분명합니다.

 

 언뜻 보면 살인을 가르치는 책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만, 사실 이 책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의 힘인 타나토스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을 배웠다. 무기의 스위치를 안전에서 발사로 전환하는 일처럼, 우리는 아주 손쉽게 인간의 심리적 안전장치를 밀어젖히는 법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심리적 안전장치가 어디에 있고,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놓을 수 있는지를 이해하여야 한다. 이것이 살해학의 목적이고, 이 책이 추구하는 목적이다.” 마지막 문단에서 저자가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