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소설집. 한겨레출판 간행

무주이장 2024. 12. 24. 16:33

 인간이 태양계를 벗어나 이주를 하고 복제인간이나 기계들이 세상을 덮는 멀거나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는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에 의존합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단어들이 나옵니다. 로몬, 라이오니, 플루이드, 과잉사지증, 숨그림자, 인지 공간, 벨라타(행성명) 등 처음 만든 듯한 단어가 낯섭니다. 우주여행선 브라우니안(호)라는 이름은 제가 알지 못했던 이미 존재하는 단어입니다. 과거 책을 읽을 때는 엄두도 못 내던 검색을 요즘은 인터넷이 있어 쉽게 확인을 합니다. 김초엽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인터넷 검색이 필수입니다.

 

  새로운 행성을 탐사하면서 만나는 새로운 인종과 사회는 지금으로부터 얼마나 먼 미래인지 알 수는 없으나 거기에도 종교가 존재하고 따라서 사제도 존재합니다. 연인이나 자매들의 관계가 불편하거나 소통이 쉽지 않은 것도 시간의 멀고 가까운 것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기술의 향상이 사람들의 관계까지 변화하게 못하는 모양입니다. 사람 사는 곳이 여기나 거기가 별 다를 게 없는 것이 조금은 식상하기도 합니다. “언어의 실을 따라 타인의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 타인의 내면을 마주했다는 한강 작가의 말은 공상, 과학, 미래라는 말로 구분한 소설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AI가 우리가 상상하면 금방 그림으로 만들어주는 세상입니다. 테니스 치는 개구리 사진에 감탄을 했더니, 금방 테니스 치는 개구리 야수로 그림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개벽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놀라는 것은 개인적이지만 이 그림을 통하여 세상을 열고 마음을 나누는 것은 사람들인 테니스 회원들입니다. 그렇다면 문학의 주제는 타인의 내면을 마주하는 것이지 우주여행이나 복제 인간이 아닐 것입니다. 작가의 이야기가 인간의 내면을 마주하는 새롭고 재미있는 공상, 과학, 미래소설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작가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작가의 말입니다.

 

  우리는 다르게 보고 듣고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말로 각자 다른 인지적 세계를 살고 있다. 그 다른 세계들이 어떻게 잠시나마 겹칠 수 있을까, 그 세계사이에 어떻게 접촉면이 생겨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지난 몇 년간 소설을 쓰며 내가 고심해 온 주제였다. 그 세계들은 결코 완전히 포개어질 수 없고 공유될 수도 없다. 우리는 광막한 우주 속을 영원토록 홀로 떠돈다. 하지만 안녕, 하고 여기서 손을 흔들 때 저쪽에서 안녕, 인사가 되돌아오는 몇 안 되는 순간들, 그럼으로써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되돌아보게 하고 때로는 살아가게 하는 교차점들.

 

  그 짧은 접촉의 순간들을 그려내는 일이, 나에게는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322~323)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