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낭독회 때 읽어주기 위하여 쓴 글들을 모은 책입니다. 짧은 이야기들로 “보통은 오십 분 동안 두 편을 낭독했다” 합니다. 모두 20편의 글이 수록되었습니다. 글이란 것이 타인의 내면과 만나는 수단이면서 서로 공감하며 세계를 넓히는 방편이긴 합니다만 요즘 시국에서는 남의 이야기들이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누구는 ‘내란 불면증’을 얘기하기도 합니다만 ‘내란 잔당’이 엄연한 살벌한 일상이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하면서도 살얼음판을 걷는 듯합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숙제라 여겨 하루에 한두 편씩 읽었습니다.
1. 저녁이면 마냥 걸었다
앓고 있는 당뇨로 매일 걷습니다. 체중이 더 늘지 않도록 운동 삼아합니다만 아직까지도 아내가 해주는 저녁이 너무 맛있어 음식량을 더 줄이지 못합니다.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줄이셔야 합니다.” 의사의 충고가 귀에 쟁쟁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걷는 동안 의사의 충고도 식탐에 대한 염려도 사라집니다. 저녁이면 ‘마냥’ 걷고 싶을 때가 요즘은 잦습니다. 체중도 덕분에 조금 줄었고요. 당신이 만약 마음을 다쳤다면 역시 권합니다.
2. 풍화에 대하여
영혼은 늙게 태어나 시간이 갈수록 어려지는데 이것이 인생의 희극이다. 반면에 육체는 어리게 태어나 점점 더 늙어가니 이것이 인생의 비극이다. (오스카 와일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은 풍화되어야만 영혼이 드러나게 돼 있어. 폐허마다 영혼이 드러나.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저절로 드러나는 영혼이지. (김연수)
3. 위험한 재회
동맥에는 세 겹의 막이 있다. (사실일까?) 심박수를 올리면 막이 터질 수 있다. 화를 내거나 거짓말을 하면 심장이 크게 뛰어 막이 터질 수도 있다. 주인공처럼 거짓말로 연인과 헤어진 후 우연히 다시 만나 거짓말을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낯섭니다. 아무리 젊더라도 당신의 연인에게 쪽팔려서 기분 나빠서 감정에 쉽게 휩쓸려 거짓말하지 마세요. 후회합니다.
4. 관계성의 물
일단 물 한잔을 얻어 마시는 게 중요해요. 물 한 잔 정도의 호의를 받을 수 있다면 관계성이 형성되거든요. 한번 맺어지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좀 쉬워집니다. 이제 이야기의 제목이 이해되시나요?
5. 고작 한 뼘의 삶
서가에 꽂힌 고작 한 뼘 두께의 책들,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선물을 받는 직업이 소설가라고 하는데, 그 선물의 두께가 저 정도랍니다. 작가는 만족한다고 합니다. 저도 받을 수 있을까요?
6. 다시 바람이 불어오기를
죽음을 상상할 때와 마찬가지로, 몇 년 뒤에나 보게 될 그 불빛은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 “잘 될 것 같다는 좋은 생각이 들 때가 없었나요?” “물론 있었지요” 이 이야기는 바로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16. 토키도키 유키
삿포로, 토키도키 유키. 하코다테, 토키도키 유키. 오타루, 토키도키 유키. 아사히카와, 토키도키 유키. 토키도키 유키는 ‘때때로 눈’이라는 뜻이랍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기는 온다는 뜻이겠지요. 인간의 바람보다 삶은 더 오래가기에 행복은 언젠가 ‘당신의 삶’ 속에서 온다는 말로 들렸답니다.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17. 나와 같은 빛을 보니
제주의 이방인 프랑스에서 태어나 지금은 멕시코시티에서 사는 '알리스'와 어차피 떠날 이방인 '나', 그리고 섬주민인 할머니가 같이 보는 빛이 무얼까? 할머니와 외손녀는 빛의 방향으로 서서 연결이 됩니다. 외손녀가 전한 딸의 부고에 눈물짓는 할머니와 ‘나’는 같이 저녁을 먹었습니다.
18. 강에 뛰어든 물고기처럼
강에 뛰어든 물고기처럼 나는 스무 살에 사랑에 뛰어들었다. 시간은 영원으로 변했다. 20세에 그녀를 만나 사랑을 했고 단지 그 사랑이 끝났을 뿐이지만 지금은 강물 밖의 물고기가 된 기분이다. 나는 80세까지 내 몫의 숨을 한 번에 내쉬었다. 결국 여든 살을 채우고 죽었지만, 사람들은 내가 실연의 아픔으로 스무 살에 요절했다고들 말했다. '불꽃같은 사랑'이란 표현이 식상했습니다.
19. 거기 까만 부분에
어둠 속에 숨은 별은 우리가 발견할 때 존재하게 된다. 별은 발견되는 것이다. 비록 그전에도 있었다고 하지만 발견하지 못하면 없는 것이 된다. 어둠 속에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반짝이는 별들이 우리 주위에 여전히 많다.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며)
20. 너무나 많은 여름이
너무나 많은 여름을 사랑하고 살았다.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했다. (아우구스티누스) 자연과 함께, 가난과 함께 많은 여름을 살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엄마와 함께 자식과 함께 너무나 많은 여름을 겪었다. 행복했다. (이야기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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