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얼굴보고 같이 살면서도 저는 아내의 마음,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지 못했습니다. 소설을 읽고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읽어낸다고 믿었지만, 책은 책이고, 생활은 ‘따로’였습니다. 아내는 지쳤습니다. 간혹 제가 바뀌지 않았냐고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실망스럽습니다. “뭐가 바꼈다는 거야?” 말투도 눈총도 무섭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라고 자격 시험을 치르고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닙니다. 자격 시험을 치렀다고 해서 무어 그리 달라지겠냐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아무 생각도 없이 아이를 낳으면 사랑으로 키울 것이라는 막연한 결심만으로는 육아의 현실은 냉엄합니다. 제가 클 때 부모로부터 매도 맞았습니다. 가난에 찌든 부모가 무슨 마음의 여유가 있어 아이를 먼저 생각하고 삶을 영위했겠습니까? 지금 젊은이들은 베이버부머 세대인 우리들은 직업의 선택에서든, 집을 장만하는 것에서든 그래도 행복했다고 하지만, 우리가 자란 환경은 대부분 열악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자식들은 부모의 거친 말과 간헐적 폭력, 자식을 충분히 지원해 주지 못한 무관심(?)으로 인하여 부모에 대한 원망이 하늘을 찔렀을 것입니다. 미셀 자우너가 사춘기 시절 그토록 엄마와 갈등을 겪었던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야 워낙 깨진 그릇이라고 하니 말을 더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책은 미셀 자우너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엄마와 함께 생활하며 겪은 애증의 기록입니다. 엄마가 암에 걸려 투병을 하면서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며 자신의 마음을 절실하고 섬세하게 기록한 책입니다. 모녀 간의 미움과 사랑, 불신과 이해의 세월이 고스란히 기록되었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저도 몇몇 부분에서 두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아이들에게 모질지 못한 제 아내의 마음을 조금 이해했고,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대했던 저에 대한 반성도 했습니다. 아이가 처음 저에게 원망과 비난을 터뜨릴 때가 기억났습니다. 암 환자가 처음 자신의 병을 알게 되었을 때 4단계의 심경 변화가 있다고 합니다. 아이에 대한 양육에 잘못이 크게 없다고 생각했던 저는 아이의 원망과 비난을 처음 확인했을 때 강하게 ‘부정’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저에게는 갑작스러운 암과 같았던 아이의 원망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부정을 거쳐 우울감이 극심해졌고 아이를 위한다는 핑계이든 살려는 저의 욕망이었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조금씩 이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타인의 마음을 쉽게 재단하고 정형화시켰던 저의 무지와 무관심을 발견했습니다. 후회는 나이가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무엇이든 알아야 후회도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젊은이에게는 후회가 생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기 방식이 틀렸고 그로 인하여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알기에는 돌아볼 길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른다고 해서 형사상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르고 저지른 일은 뒤늦었더라도 알고 뉘우치고 반성하면 용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후회는 늘 늦게 찾아옵니다.
굳이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셔야 과거를 돌아보고 잘못을 확인하고 수정, 시정하는 태도를 가진다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보편적인 룰일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피할 수 없습니다.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이토록 담담하고 섬세하고 솔직하게 쓸 수 있는 저자가 좋아 보였습니다. 우리 세대는 표리부동하기도 했고,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이중적인 삶을 현실이 준 조건으로 배웠습니다. 남자는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세상에 사람이 울 일이 세 번 밖에 없겠습니까? 이런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란 우리의 아들 딸은 우리보다 건강합니다.
한국 음식 재료들을 파는 H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며 엄마가 해주었던 음식을 기억하며 우는 미셀 자우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경험이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합니다. 타인을 이해하는 공부에 도움이 될 책입니다. 너무 고답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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