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관리자들. 이혁진 장편소설. 민음사 간행.

무주이장 2024. 9. 3. 15:58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이 건설회사였습니다. 무슨 꿈이 있어 들어간 것도 아니고 대학도 졸업했으니 어디선가 밥벌이는 해야 하는데, 혼자서 낑낑거리며 장고 끝에 악수를 두어 잘못 들어갔던 곳을 빠져나와 갈 곳을 둘러보니 건설회사 한 곳뿐이었습니다. 제가 지원한 회사의 계열사에 계시는 형님이 수소문을 하더니 낙방 소식을 전하며 위로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일을 하러 오라는 소식이 뒤이어 들렸습니다. 이젠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이후 한 번의 전직을 하고 마지막으로 시행사에서 십여 년을 끝으로 건설과는 이별을 했습니다. 30년 남짓 건설밥을 먹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을 다녀본 경험과 비교하면 건설회사는 나름 매력적인 직장입니다. 건설현장은 본사의 감독을 받지만 독립채산처럼 운영이 가능합니다. 사업을 잘 운영하여 흑자가 나면 현장 분위기도 좋고 보람을 느낍니다. 어려운 현장을 공기를 단축하거나 공법을 달리하여 흑자로 전환시키는 경영의 묘도 간혹 구경할 수 있습니다. 건축공사를 기준하면 우선 토목 기술자들이 투입되어 현장을 정리하고 기초공사를 합니다. 이어 건축기술자들이 투입되고 뒤이어 전기기술자, 그리고 설비기술자들이 투입되어 일이 끝나면 먼저 현장을 떠나고 뒤에 온 사람들은 앞의 공정을 이어 전체를 완성해 갑니다. 현장에서는 일 때문에 갈등이 생기지 사람 때문에 갈등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위계질서가 명확하기도 하지만 책임을 전제한 위계질서이기에 무능한 책임자는 버티기에 힘이 듭니다. 제 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저의 경험은 긍정적입니다.

 

  안전사고가 가장 빈번한 곳이 건설현장입니다. 지금도 노동청에서 보내는 '중대재해 발생 알림' 단체카톡에서는 건설현장의 사망사고가 가장 빈번한 듯합니다. 그래도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집중적인 감시와 감독을 받은 결과이기도 하지만 사고는 가장 큰 손해라는 경험이 반복되어 학습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20년 전 아파트 건설현장을 방문하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건설현장이 제조업 공장보다 정리가 더 잘 되었고 깔끔했습니다. 비법은 딱 하나였습니다. 안전관리 직원에게 2-3명의 조공을 붙여 매일 현장을 돌아다니며 위험한 지역을 정리하고 정돈하는 일을 시킨 겁니다. 미장공이 미장을 하며 흘린 몰탈이 말라서 뒤 이은 공종의 사람들이 불평을 하며 치우던 것이 과거 현장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림없는 횡패입니다. 안전장구를 무시하면 현장에서 쫓겨납니다. 어제 마신 술이 깨지 않으면 역시 퇴출됩니다. 현장식당에서 술을 팔지 않은 것도 제가 현장 근무할 때부터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건설현장이 건설적이라 좋습니다.

 

 인간관계가 단순하여 갈등이 적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저 혼자의 생각이지만 기술자들은 토목, 건축, 설비, 전기 순서로 순진합니다. 가장 약은 관리직도 은행이나 대기업 사무직원들보다는 순수하고 정직하고 순진합니다. 기술자들은 일이 없어 대기하면서 급여를 받으면 그걸 못 참고 다른 현장을 찾아 전직을 합니다. 쉬면서 월급 받는데 왜 그러냐 물으면 그냥 재미없다고 합니다. 건설회사의 노조는 그래서 할 일이 별로 없기도 합니다. 몸으로 때우며 벌어먹는 사람들의 습관이 그런 가 봅니다. “놀면서 월급 받으면 미안하잖아요.” 그냥 하는 말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소설 관리자들에서 한 대리를 제외하고 노동자들은 건설회사 소속원들은 아닙니다. 건설회사의 일을 받아 노동을 하는 노동자입니다. 그들의 일은 힘듭니다. 직종에 따라 일당이 다들 다르지만 일만 계속된다면 그래도 아쉬워하지 않을 정도는 법니다. 문제는 일이 일 년 내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저도 초기 월급이 작을 때, 제 현장에서 모래나 벽돌을 져 나르며 일당을 벌었습니다. 목욕비를 제하고 저녁 술값으로 썼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 좋았습니다. 그들의 절박감은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노는 날이 공치는 날이고 일당은 없는 날이니 집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였을 겁니다. 이 현장이 끝나면 다음 현장은 어디로 가나 걱정도 많았을 겁니다.

 

 사망 사고가 일어난 건설현장의 소장과 직원 그리고 노동자들 간에 벌어지는 이야기가 이 책의 큰 줄기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관리의 절묘함이 어떻게 사람을 격동시켜 비루하고 초라한 지경의 사람을 정상으로 회복시키는지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습니다. 작가의 이야기가 언제 적 이야기인지 출판일을 확인했습니다. 초판이 2021 9월이네요. 가까운 과거의 경험이라 생각하니 지금까지 제가 한 이야기들이 모두 허구였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도 건설현장에서 살아내는 모든 분들 안전하게 일하시고, 누구에게라도 당당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관리하는 관리자들에 대하여 대응하여 자기 관리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게 노가다라고 배웠고 경험했습니다. 아직도 낮은 덥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