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여전하다는 말을 간혹 듣습니다. 그런데 사실 여전한 것은 거의 없는듯합니다. 작년과 달리 금년은 여름이 더 덥습니다. 작년보다 금년의 농사 작황이 별로입니다. 콩은 꽃을 피우지만 열매를 매달지 못합니다. 봄만 해도 비가 적당히 왔고, 장마도 꾸준했는데 더위 통에는 가뭄이 심했다고 합니다. 그 탓에 콩꽃이 핀 후 그냥 시들어버렸습니다. 호박도 종전처럼 시원하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과일 값이 작년에 이어 금년도 비쌉니다. 한해 두 해가 서로 다른데 사람이 일생을 통하여 만나는 할아버지 세대, 아버지 어머니 세대, 그리고 우리 세대, 자식 세대, 손자 세대가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세대를 베이비붐 세대라고 부르더니, 어른들의 부양의무와 함께 자식들의 부양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로서 샌드위치 세대라고도 합니다. 많이 듣기는 하지만 정확한 의미도 모를 정도입니다. 밀레니엄, M, Z, MZ세대를 분류하는 기준이 단지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할까요?
‘내 남편’은 남편을 지독히도 사랑하는 아내의 불편과 불안, 만족과 불만, 위로 등의 복합적인 마음을 표현한 이야기입니다.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논리 모순의 이야기일 것으로 짐작하고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진짜 정말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의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왜 이리 저까지 불안한 마음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읽고 있는 걸까요? 의심과 불안 불만은 전염된다고 하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없애는 결론이 빨리 나오길 바랄 뿐입니다. 불편한 채 읽는 책이므로 쉽게 손에서 떨굴 것 같지만 그게 또 쉽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작가 모드 방튀라는 대단한 이야기꾼인 것은 분명합니다.
소설이란 것이 그럴듯한 이야기, 언제 어디서든 있을 것 같은 이야기, 특별함 속에 깃든 보편성이 있어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설득이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 그럴 수가 있겠어.’하고요. 사랑하기에 아내의 모든 행동이 합리화되는 논리에는 깜짝 놀라기만 했을 뿐 쉽게 동의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지속적인 행동의 목표가 남편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이라 합리화된다는 아내의 생각은 궤변에 가깝습니다. 그렇지만 궤변도 나름 설득력이 있긴 하지요.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힘이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세대가 다른 작가가 구상한 이야기는 과연 현실에 터한 부분이 없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와 함께 사는 다른 세대의 나도 공존하는 현실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가능할까? 궁금합니다. 그가 사는 곳이 프랑스이고 여긴 한국이라 다르지 않을까? 한국에서 이 책을 읽는 젊은 독자들의 공감도 없지 않은 듯한데 그렇다면 시대를 읽지 못한 나의 불성실을 탓해야 할까 생각도 해봅니다.
요즘 젊은 세대의 삶이 그렇게 수월하진 않다고 하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경제적 풍요가 필수조건이 되고, 아이와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루틴으로 하는 충분조건에 피곤해하는 젊은이를 익히 봅니다. 사랑을 유지하는 것이 단지 마음만으로 되지 않는 현실을 봅니다. 실직은 이혼으로 쉽게 이어지고, 가족을 등한시 한 가장은 소외되기도 합니다. 쉽지 않은 현실인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현실이 남편을 지독히도 사랑하지만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불안을 생활화하며 살아가는 아내의 이야기로 변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을 가졌지만 느끼지 못하는 불안은 어디에서 기인할까요?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전에는 본 적 없는 신선한 이야기,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로 이해하기에 쉽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남편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고 불안해할 때 당신은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이 이야기에서 남편의 처신을 보면서 세대의 다름이 인종의 다름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하면 제가 너무 꼰대일까요? 당신은 배우자의 불안을 없애려는 노력을 하겠습니까? 아니면 그의 불안을 이용하겠습니까? 노력에도 희생이 따르고 이용하기에도 비용은 분명히 듭니다. 당신은 희생과 비용 중 어느 것을 수용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질문을 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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