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암컷들(BITCH).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웅진싱크빅 간행 4

무주이장 2024. 2. 16. 17:33

조작된 암컷 신화

 

 암컷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춤을 잘 추는 수컷?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 집을 꾸민 수컷, 덩치가 크고 힘이 세 보이는 수컷? 잘 생긴 수컷? 20년에 가까운 집중 연구 끝에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유일하게 합의에 도달한 한 가지가 있으니 암컷의 선택이 본질적으로 종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라고 합니다.

 

 뭐가 미안한지 알아? 말해 봐. 저 봐. 모르네. 그러니까 나는 절망이야. 그만 만나.” 남성이 여성을 절망하게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종잡을 수 없는 여성의 배우자 선택 기준을 아직도 모른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암컷은 마냥 순진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당시 시대의 일반적인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연구자들은 붉은날개검은새 수컷을 정관수술을 한 후 수컷의 하렘에 있는 암컷들(이 새는 일부다처제를 운영합니다)이 낳은 알을 조사하니 알의 69퍼센트가 새끼를 까는 유정란임을 확인했습니다. 암컷의 순진함은 인간이 암컷에게 원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암컷의 성적 문란함에 당황한 과학자들의 다수는 남성이었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제가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을 수정했습니다.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원숭이의 수컷이 암컷이 낳은 새끼를 죽이는 이유가 친자가 아니라는 이유, 즉 암컷의 바람기를 응징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원숭이 수컷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아도 다른 수컷의 자식을 알아채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내용이었습니다. 암컷의 바람기를 허용할 수 없다는 남성의 도덕론에 불과했습니다.

 

 암컷의 난교에 관한 연구가 있습니다. UC 데이비스 명예교수인 미국인 인류학자 세라 블래퍼 허디는 인도에서 하누만랑구르원숭이를 연구하면서 외부에서 온 수컷들이 무리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젖을 떼지 않은 어린 새끼를 죽이는 일이 허다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점령군 수컷은 다른 수컷과 낳은 새끼가 젖을 뗀 후 다시 가임기가 될 때까지 2~3년이나 암컷을 기다리는 대신, 새로운 우두머리는 새끼를 살해하여 어미가 즉시 발정기에 들어서게 강제하고 곧바로 제 새끼를 임신하게 한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이런 관찰을 바탕으로 허디는 암컷이 영아 살해를 막기 위한 방책으로 무리에 침입한 수컷과 섹스를 하게 되었다는 이론을 세웠습니다. 허디의 이론은 랑구르 암컷이 왜 무리에서 나와 수컷들이 모인 곳으로 가서 유혹의 몸짓을 보였는지, 또 왜 어떤 암컷은 심지어 임신 중에도 무리 밖 수컷과 섹스를 하는지 설명합니다.

 

 사자도 그렇고, 돌고래에서 쥐에 이르기까지 동물의 왕국 전역에서 영아 살해는 익히 알려진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허디는 덮어놓고 일반화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암컷의 난교는 어미가 자신의 소중한 난자를 모두 한 바구니에 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더 건강한 자손으로 이어진다는 이점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친부가 누군지 혼란을 주는 것이 단지 영아 살해를 막는 보험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친자 정보를 조작하여 암컷이 얻는 이점을 예시한 가장 훌륭한 증거는 전형적인 일처다부의 종으로 알려진 바위종다리에서 발견됩니다. 두 수컷과 교미한 횟수에 비례하여 모두 암컷이 새끼를 부양하는 과제에 협조를 하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동물계 전체에서 암컷은 플레이보이 저택에서 탈출하여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위해 성적으로 해방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거기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성실한 설득입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