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사건번호 231030 가단 42. 욥 vs 하나님) 1
어제 운동 중에 팔순의 목사님이 욥기를 해설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요지는 욥기 1장에서 욥이 의인이라는 기록이 사람들의 오해를 불렀다며, 욥이 인과론을 가지고 주장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고 주장한다는 내용입니다. 창조주는 인과론을 초월하는 존재이니만큼 욥이 항변 대상을 잘못 찾았다는 설명입니다. 욥은 완벽히 의인이 될 수 없으며, 창조주는 인과론을 초월한다는 설명은 사람이 죄가 없어도 하나님은 벌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에 다름이 아니었고 욥이 의인이라는 설명 때문에 마치 벌을 받으면 안 되는 것처럼 오해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욥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아무런 죄가 없어도 하나님은 사탄과 내기를 걸어 욥의 재산과 신체를 해치는 행위가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이에 반해 부처님은 이 세상 만물은 인과법칙으로 흘러간다고 설명합니다. 인과의 법칙이 적용되니 행실을 바로 하고 마음을 정갈히 하라고 권면하십니다. 일체의 욕망은 고통의 원천이니 욕망을 끊으라고 하십니다. 욕망은 사실 자세히 보면 그렇게 애걸복걸할 대상이 아니니 심안을 떠서 욕망의 허망함을 보라고 하십니다. 욥은 어떤 인과의 법칙에 걸렸을까요? 욥은 여호와를 믿는 신자가 된 인연의 고통을 겪었다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어떤 설명보다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것은 나중에 따질 일입니다. 만약 욥이 여호와를 믿지 않고 살았다면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자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사탄과 내기도 걸지 않았을 것이며, 욥은 생로병사의 일반적인 인간의 고통을 겪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팔순 목사님이 설명하신 창조주는 인과의 법칙을 뛰어넘는다는 설명은 사람들에게는 이해 부득의 설명이 될 것입니다. 이런 창조주를 빙자한 교회의 악행은 중세에 만연하였고, 오늘도 구교나 신교를 불문하고 나타납니다. 힘을 가지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설명은 지금은 저항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저는 엘리후가 욥에게 하는 말을 재판관인 하나님에게 밉보여 욥의 고통이 더 길어질 것을 염려한 엘리후가 욥의 기존의 변론을 가로막고 재판관인 하나님에게 욥의 죄를 용서할 것을 요청하는 욥을 위한 변론으로 들었다고 썼습니다. 그런 시각으로 글을 이어보겠습니다. 사실 이 일의 사단은 하나님이 사탄과 시작한 내기였습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닌 두 번에 걸친 내기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욥의 재산은 하루아침에 도둑을 맞고, 자식들은 몰살을 당했으며, 유일하게 남은 아내에게 저주의 말을 듣고는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흉측한 몰골로 인하여 친구들조차 할 말을 잃을 정도였고 평소 욥을 존경하고 따르던 마을 주민들은 욥을 경멸하고 조롱하는 언행을 무시로 하여 욥을 절망하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에 있어 욥은 사건의 당사자인 하나님을 둔 재판부를 기피하는 신청을 해도 무방합니다. 욥은 계속해서 대항이 불가능한 하나님을 뵙고 자기가 왜 어떤 이유로 극심한 고통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응답은 거부의 의사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판국이라면 판결은 욥에게 유리할 리 없다는 판단을 한 변호인 엘리후가 최후 변론을 논지를 바꿔 주장한 것이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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