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의 발현은 과학의 역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설, 공생가설
과학의 발전은 경이롭습니다. 과거 어떤 일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났는지를 알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 우리가 어떤 생활을 할 수 있을지는 현재의 과학 연구 과제들을 확인하면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로켓을 만들더니, 우주로 나갑니다. 달에 착륙하더니, 태양계 바깥으로 우리의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과학의 힘은 정말 대단합니다.
SF영화를 통하여 우리는 신기로운 이야기들을 접합니다. 영상기술이 발전하여 화면의 현실감이 현실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바닷속이 진짜 바닷속 같고, 우주가 정말 우주 같습니다. 기술과 과학의 발전은 그 끝이 어딜까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끝없는 발전이란 게 과연 가능할까, 그 발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궁리하다 보면 과학이 아니라 사람에게 생각이 넘어갑니다. 인간성은 과학의 발전과 비례하여 어떤 성취를 이루었을까 생각하면 회의감이 듭니다. 높은 과학기술 수준을 이룬 지금 인간의 모습은 평화를 잃어버린 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과학이 발전한 세상을 배경으로 한 소설 속 인간세상에는 차별과 억압, 소외와 고통이 여전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가진 본연의 한계 때문일까요? 아니면 과학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과는 애당초 연관이 없는 것일까요? 과학과 기술보다는 사람이 보이는 책이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입니다. 공상과학소설에서 양념으로 나오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를 앙트레로 내놓은 공상과학소설입니다. 사람이 보이는 이야기는 흥미를 일으킵니다.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들이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이면 대부분은 유족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합니다. 범행 당시의 잔인한 모습을 상상하면 그들이 사죄하는 말이 믿기지 않습니다. 사죄하는 범인과 범행하는 범인의 공존은 가능할까요?
‘공생가설’에서는 7살까지 아이들과 공생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때 실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져 버린, 류드밀라 행성에서 살았던 어떤 존재들이 7살까지 아이들의 뇌에서 함께 공존하며 인간성의 표징이라고 믿고 있는 감정과 마음, 사랑, 이타심을 가르친다고(혹은 그럴지 모른다고) 저자는 상정합니다. 하지만 이 존재들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우는 아이들의 뇌를 판독한 데이터의 분석은 믿기 어려웠습니다. 8살 이후 아이들의 뇌에서는 전과는 달리 데이터 수집이 되지 않습니다. 공생이 끝나고, 데이터를 수집할 수 없으면 인간은 사랑과 이타심의 감정과 마음을 상실한다는 것이 이 존재들을 반증할 뿐입니다. 화가 류드밀라가 그린 행성 류드밀라의 풍경에 이유도 모른 채 공감을 했던 많은 사람들의 경험에 기대어 한때는 공존했으나, 지금은 잃어버린 존재들에 대한 짐작을 할 뿐입니다. 뇌를 분석하는 과학 기술은 공생가설을 주장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잃어버린 사랑과 이타심을 회복하는 데에는 힘을 크게 쓰지 못합니다. 먼 미래에 우리는 같이 모여 살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사라진 행성에 존재했던 다른 존재들에게 기대어 옹알이할 수 있는 동안에만 인간성을 갖는 세상을 보았습니다.
미래에서 돌아와 다시 범인의 말을 생각합니다. 나이가 든 범인이 한 사죄의 말은 진심일까요? 아니면 당장을 모면하기 위한 계산된 속임수일까요? 생각조차 하기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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