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은 인간성을 갈아서 만듭니다
우리 회사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있습니다. 전문성이 없는 단순 근로자들입니다. E-9으로 분류된 근로자들입니다. 열심히 일을 하면 본국에서 버는 월급의 10배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먼 이국 땅에 가족들과 헤어져 근로를 제공합니다. 처음 입국하면 3년의 기간을 체류할 수 있고, 한 번 1년 10개월을 연장하여 줍니다. 모두 4년 10개월입니다. 젊은 나이에 갓 결혼을 하고 오는 경우도 있고, 일을 하다 잠깐 귀국하여 결혼을 하고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내가 딸을 낳았다면서 직접 보지도 만지지도 못한 아이의 사진을 휴식시간마다 보면서 혼자 울고 웃는 근로자들을 보게 됩니다. 훨씬 더 경제적인 근로자들이 웃는 날은 오늘은 아닙니다. 귀국하는 그날 이후라고 기대는 하지만 인생이 그렇게 계획된 대로 흘러갈지는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경제성의 비정함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장거리 우주여행에 필요한 필수 연구과제를 완성하기 위하여 가족들이 함께 가는 행성이민에서 이탈한 후 다음 우주선을 타기로 합니다. 잠깐의 기간이라 짐작했습니다. 얼마 걸리지 않아 딥프리징(냉동수면)을 완성시킵니다. 하지만 그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기술은 발전하여 행성 간의 항해방법인 워프 항법은 경제성을 잃었고, 이제는 웜홀 통로를 이용한 행성 간 이동으로 바뀌었습니다. 딥프리징이 이제는 우주여행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주여행은 빨라졌습니다. 하지만 웜홀은 모든 행성 간에 다 있는 통로가 아닌 것이 문제였습니다. 가족들이 먼저 간 행성 근처에는 웜홀이 없어 항해할 우주선 노선이 사라지고 맙니다. 워프 항법을 이용한 우주선의 경제성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딥프리징을 하고 오랜 시간 우주를 여행하는 방법은 비경제적이 되었습니다. 간간이 있던 우주비행선도 완전히 사라지고, 불필요한 우주 정거장은 철거되기에 이릅니다. 불규칙적인 우주선을 기다리기 위해 주인공은 딥프리징을 이용해 수면을 하고 깨어나길 여러 차례 하면서 우주정거장에 나와 가족이 있는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을 확인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주선을 탈 확률은 0에 수렴합니다. 주인공은 노파가 되었고 우주 정거장이 철거된다는 소식에 행성 간의 여행에는 적합하지 않은 셔틀을 타고 가족들이 있는 행성을 향해 출발합니다. 세월이 흘러 가족들은 이미 죽었겠지만 노파의 마음속에 가족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주인공은 본인의 의지와는 달리 경제성을 이유로 가족을 잃었고, 고립되었고 소외되었습니다.
경제성은 인간을 배려하는 척하지만 인간을 배제합니다. 인간을 소외시킵니다. 돈 되는 곳에만 인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돈 되지 않는 곳의 인간은 고립됩니다. 고립된 인간은 소리치지만 그들의 말은 들리지 않습니다. 그들의 항변은 경제성을 구비하지 못한 이유로 파기됩니다. “경제야~~ 경제야~~” 김영삼 정부 시절, 망가진 경제를 찾아 헤매던 경제의 어머니처럼 외환위기가 닥쳐 경제가 망가지고 세상이 다 깨어질 것 같은 공포가 전제되어야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나의 조그만 이익을 위하여 눈을 감을 수 있고 귀를 닫을 수 있는 세상이 행성 간의 여행을 하는 미래에도 그대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소름이 돋습니다. 경제성은 인간성을 갈아서 만듭니다. 작가는 우주로 날아가는 미래에도 그렇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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