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어두운 사람들이 말하면 귀 밝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진실
탄소 중립 선언을 대통령이 했을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의 연설 상당 부분을 ‘흑백’으로 연출한 이유가 컬러화면 대비 4분의 1 수준의 데이터를 소모하는 흑백화면을 통해 이른바 ‘디지털 탄소 발자국’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으면 하는 의도였다고 합니다. 이 날 행사의 ‘콘셉트’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흑백 연설’인 것이지요. 그런데...
국민의 힘에서 방송법 위반으로 저자를 고발했습니다. 고발 요지는 ‘방송법의 근본적인 취지를 무너뜨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방송편성에 관하여 규제나 간섭(흑백으로 방송을 내보내라는 강제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합니다)을 한 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행사나 연설을 어떻게 제작해 녹화나 생방송으로 내보낼지는 청와대가 결정할 일이고, 이를 송출할지 안 할지는 각 방송사가 결정할 일입니다. 방송사를 강제할 수 없는 일이고 각 자의 역할이 구분된 일임에도 국민의 힘은 고발을 한 것입니다. 세상일이란 게 처음인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생각을 조금만 뒤로 이동하면 비슷한 일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하나만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입니다. 대통령이라면 ‘영도자’ ‘영명한 지도자’ ‘구국의 지도자’로 숭앙받던 시절이 가고 고작 고졸인 주제에 대통령이 된 것을 꼴 보기 싫다고 매일 계속해서 비난하던 시절입니다. 대통령이 머리를 깎고 나오면 ‘조폭’ ‘깍두기’라고 조롱하던 그때입니다. 전시작전지휘권을 가져오겠다면서 미국과 협상을 통해 향후 일정을 확정해 가는 과정에서, 성우회라고 하는 장성들이 퇴역한 단체에서 연일 반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군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사병에게는 별은 하늘에 존재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별이 떴다고 하면 겨울에 도로를 물청소하고, 애꿎은 배수구를 정비랍시고 또 팠습니다. 없는 꽃을 심고 내일이면 소용없는 것들로 장식을 합니다. 이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면서도 당시 사병들은 전략과 전술에 능한 장군들을 대접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들의 목숨을 살려 줄 그런 존재라고 믿었고, 그래서 그들이 돌리는 뺑뺑이를 비록 욕을 하면서도 기꺼이 돌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전략과 전술에 능하다고 믿었던 장군들이라는 것들이 대한민국 군대를 책임진 세월이 몇 년이고 그들이 요구한 돈을 쓴 것이 얼만데, 아직까지 북한의 군사력에 대응할 능력이 안 된다는 주장을 백주대낮에 낯을 들고 한 것입니다. 알고 보니 군 장성들은 그동안 신비주의 영업을 한 것이었습니다. 아무 능력도 없는 것들이 자기들끼리 벽을 치고, 커튼을 드려 안을 숨기고 잘난 체, 똑똑한 체, 아는 체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속은 세월이 아깝고, 그들에게 경례를 한 횟수만큼 수시로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아마 그때 제 귀가 밝아졌던 것 같습니다.
국민의 힘도 퇴역한 장성들과 비슷한 존재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탄소 중립 선언을 흑백으로 방송하였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 번만 머리를 굴리면 알 수 있습니다. 데이터 소모가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몰라도 됩니다. 무슨 의도일까 일 초만 생각하면 될 일입니다. 제가 오버한 걸까요. 이 방송을 본 외국대사들의 반응이 글의 마지막에 소개됩니다. 읽어보세요. 읽을수록 우리가 부끄러워집니다. 야당이 저 정도인데... 그때 그 사람들이 지금은 여당이 되어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눈 어두운 자들이 활개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저들을 지지한 우리들 때문입니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부모임 중 “형수님은 어떻게 하다 저 형님을 만났습니까?” 제가 물었습니다. 형수님은 하늘 한번 쳐다보고 한숨을 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내 눈을 찔렀다 아입니까” 모두 한바탕 웃었지만 지금은 웃을 상황이 아닌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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