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 하트: 모리스 르블랑, 아르센 뤼팽의 연대기 작가가 된 사연
아르센 뤼팽이라는 도둑이 직접 찾아오거나 또는 작가가 쫓아다니며 뤼팽의 행적을 기록한 사람은 작가 모리스 르블랑입니다. 뤼팽은 스스로 직접 쓴 광고문을 이곳저곳 신문에 게재를 하기도 했지만, 전문적인 작가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과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풀어쓰기에는 아마도 필력이 모자란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인연이라는 것이 묘해서 일부러 의도적으로 만들려고 하기도 하지만(사기꾼들이나 도둑들이 보통 이런 수법을 많이 쓰지요) 보통은 자신도 모르게 맺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리스 르블랑이 뤼팽을 만난 것도 작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작가는 마이요 대로 방향의 뇌일리에 위치한 작은 호텔에 1년 전부터 묵고 있습니다. 매력적이고 무사태평한 사람, 장 다스프리는 작가의 친구입니다. 장은 호텔이 무섭지 않으냐고 묻고는 했습니다. 너무 외진 곳이라 이렇다 할 이웃도 없고, 어정쩡한 공터에 위치한 탓에 묻고는 했지만, 작가는 보통은 겁을 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모리스가 아무도 없는 방에서 봉인된 봉투를 발견하고 그 내용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봉인된 봉투 속에서 꼼짝도 하지 말고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는 내용을 확인하고 모리스는 밤새 잠도 들지 못하고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침실 건너 위치한 서재에서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 침입을 하는 것을 확인하였지만 대응을 할지 가만히 있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밤새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던 모리스에게는 모든 것이 고문이었습니다. 새벽녘에야 침입자의 흔적에 총을 쏘고 서재를 뒤져 발견한 것은 일곱 개의 빨간색 하트 모양의 뾰족한 끄트머리마다 송곳으로 뚫은 듯한 자그마한 구멍이 규칙적으로 하나씩 나 있는 세븐하트 카드였습니다.
질 블라스지 필진이었던 모리스는 간밤에 겪은 일로 뒤숭숭한 마음에 그만 그 모든 것을 거기에다 줄줄이 털어놓기에 이르렀고, 어느 날 아침 그 기사를 본 40대의 남자가 찾아와서 모리스와 만난 후 그가 없는 틈을 타 모리스의 방에서 권총 자살을 합니다. 시체 옆에서는 세븐하트 카드가 또다시 발견되고, 죽은 자의 손에서는 엉망으로 구겨진 명함 한 장이 굴러 나옵니다. ‘조르주 앙데르마트, 베리가 37번지’ 죽은 자는 에티엔느 바랭이었고 그가 가진 명함의 주인공은 앙데르마트로 파리의 막강한 은행가 중 한 명이며, 금속 조합의 창립자이자 회장입니다. 둘은 어떻게 얽혔을까요? 앙데르마트의 증언에 의하면 죽은 바랭의 형인 알프레드 바랭을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진으로 한 번 봤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앙데르마트의 부인이 모리스와 장을 찾아와서 들려준 이야기는 바랭 형제에게 남편 앙데르마트가 협박을 받고 있다는 다른 이야기를 듣습니다. 바랭 형제와 앙데르마트의 인연이 생긴 것은 잠수함 설계를 한 루이 라콩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세븐 하트로 명명된 잠수함 실험이 있을 것이라는 기사가 나오고 루이 라콩브의 정체와 함께 잠수함의 보완설계도가 사라졌다는 기사가 공개됩니다.
사건을 요약하면 루이 라콩브의 설계도를 기반으로 잠수함을 실험할 자금을 앙데르마트에게 요청한 사람은 바랭 형제였습니다. 그러던 중 루이 라콩브는 실종되고 그가 설계도와 함께 앙데르마트 부인이 보낸 편지를 넣은 가방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바랭 형제는 루이 라콩브의 가방을 가지고 있다며 부인의 외도로 의심되는 편지를 이용해 앙데르마트를 협박 중이었고, 동생 바랭이 모리스의 방에서 자살을 한 것입니다. 이 사건을 모리스와 친구 장 다스프리가 풀어나가는 중입니다. 바랭 형제는 잠수함 실험을 위한 자금을 지원받기 위하여 앙데르마트와 협상을 하는 중, 루이 라콩브와 함께 모리스의 방에서 묵었던 사실이 밝혀집니다. 마일리 대로에 있는 호텔 그 방, 말입니다.
여러분도 이 정도의 단서라면 구멍 뚫린 세븐 하트 카드는 일종의 열쇠라는 것을 추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모리스의 방, 곧 전에는 루이 라콩브와 바랭 형제의 방이죠, 그곳에 비밀금고를 만들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어떻게 이 열쇠를 사용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실종된 루이 라콩브의 시신은 호텔 마당에서 발견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건과 연관된 사람은 앙데르마트와 알프레드 바랭이 남습니다.
연대기 작가인 모리스 르블랑은 사건 해결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사건을 정리하거나 단서를 찾거나 단서를 이용하여 사건을 재현하는 방법도 제대로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친구 장 디스프리가 사건에 매달려 애써는 중에도 관심을 가지기는커녕 피곤하다는 핑계로 48시간 동안 잠만 자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면서 친구 장 다스프리가 뤼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와의 인연은 이렇게 자기 호텔방을 무대로 펼쳐진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맺은 겁니다.
저는 모리스와 장 다스프리가 동행하여 도착한 마이요 대로 방향의 뇌일리라는 주소를 확인하면서 중요한 복선이 있다고 짐작했고, 세븐 하트 카드를 확인하자 열쇠임을 직감했습니다. 열쇠를 이용할 금고는 모리스의 침실이나 서재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추리했습니다. 하지만 그 열쇠를 이용할 공간을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결국 장 다스프리가 설명하는 마지막 장면에서야 제가 보지 못한 샤를마뉴 대제(하트카드의 K카드 주인공이랍니다)가 그려진 모자이크 초상화가 금고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목은 ‘세븐 하트’입니다. 아르센 뤼팽의 연대기 작가인 모리스 르블랑이 처음 아르센 뤼팽을 만난 사건과 해결과정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처음부터 복선을 깔고 사람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솜씨가 뛰어난 작가입니다. 물론 본 사실을 정리하였으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본 것을 다시 재구성하여 매력적인 이야기로 재생하는 것은 다른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제가 한 말을 고쳐야겠습니다. 그는 뛰어난 추리력을 가진 작가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호텔방과 금고의 열쇠, 세븐 하트 카드란 단서를 쥐고도 그의 이야기에 끌려 다녔습니다. 독자보다 뛰어난 작가라야 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그렇다고 하지만 다른 분들은 어떨지 알 수는 없지만 제 생각으로는 다른 분들도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니라고요? 그럼 책 240~293쪽을 읽으신 후 제게 알려주십시오. 여러분들의 경험을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신: 장 다스프리는 6개월 후에 모로코 국경 근처에서 자살하였다고 모리스는 이야기 처음에서 소개합니다. 우리를 속이려는 가증스러운 거짓말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후 장 다스프리는 보이지 않으니 자살했다는 말이 거짓말이니 가증스럽다느니 하는 말은 모리스에게 속은 저의 알량한 분풀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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