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앵베르의 금고: 아르센 뤼팽 바보 되다.
대통령의 아들인 이강석이 그 사람의 집으로 방문을 했습니다.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호텔보다는 지방 유지로서 이름이 자자한 그 사람의 집으로 방문을 한 것이 조금은 이상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경찰서장을 불러 자기가 여기 있다는 소문이 나지 않도록 신변 보호 겸 비밀 경호원을 요구한 것이나, 기업체의 회장들을 무시로 불러 저녁을 같이 하는 것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이것저것 준비를 하느라 그 사람의 집은 바빴지만, 행사가 끝나면 이것저것 뻑적지근하게 소리 나게도, 어떤 경우에는 은밀히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너무나 후했습니다. 그는 이강석의 방문을 따로 소문내지 않았지만, 그의 집을 방문하고 이강석과 더불어 식사를 한 사람들은 여기저기 소리 없이 소문을 내며 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강석은 이승만의 양자입니다. 그를 모시고 있던 그 사람에게 사람들이 줄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은행 지점장들은 자신들이 부행장이 될 수 있도록 줄을 댔고, 군인들은 별을 달기 위해 대낮에도 별을 찾아다녔습니다. 이제는 그 지역 누구도 이강석의 존재를 모른다고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그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강석도 사라졌습니다. 한동안 조용히 소용돌이치던 지역 사회에 굉음이 들렸습니다. 은행지점장은 불법으로 대출해 준 금액을 감당하지 못하고는 그를 찾았고, 여기저기 돈보따리를 돌렸던 군인들은 그를 찾아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는 소리 소문 없이 그 지역을 떠났고 그의 행적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사기를 쳤다는 소문이 그가 없어진 자리에서 생겼다가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백만장자 앵베르 가문이 상속을 받은 자산은 모두 100만 프랑이 넘었습니다. 기울어져 가는 귀족 집안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상속 재산 모두 채권이었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상속의 조건으로 받은 채권의 매도가 금지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채권이 그런 것은 아니었고 생활비를 조달할 목적의 채권 양도는 일부 품목을 정하여 가능하다고 했고 1년에 한 번 앵베르 씨는 마담 앵베르와 상의해 채권을 팔러 은행을 방문한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밤길을 걷던 앵베르 씨가 괴한에게 강도를 당했는데, 다행히 의인의 도움을 받아 큰 봉변을 면했습니다. 앵베르와 마담 앵베르는 의인을 초대하여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의인의 경제적 궁핍을 알아채고는 고맙게도 그에게 방을 하나 내주고 집안의 잡무를 보는 조건으로 고용을 했습니다. 실제 앵베르 집안에서 처리할 잡무라는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차츰 앵베르 가에서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도 의인의 존재를 무시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의인은 앵베르 부부와 친해지면서 금고 속에 엄중하게 보관 중인 채권의 종류와 금액을 확인할 정도가 되자 앵베르 부부의 의인에 대한 신뢰와 비록 작지만 수고비를 주는 호의에 감사를 표하기는커녕 앵베르 부부에게 찬물을 끼얹듯 금고 속의 채권을 모두 훔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의인은 의인이 아니었습니다. 도둑 아르센 뤼팽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고용해 밤길에 앵베르 씨에게 강도짓을 하게 시켰고, 각본에 따라 뤼팽은 강도를 물리치고 앵베르 씨를 구원한 후 그 집으로 들어가서는 드디어 금고 속의 채권을 모두 훔친 것이었습니다.
채권을 도난당한 앵베르 부부는 아무런 말도 없이 행방을 감췄습니다. 도둑을 맞았다며 당국에 신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그들 부부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도둑을 맞은 사람이 조용하니 세상은 조용할 텐데 오히려 시끄러워졌습니다. 앵베르 부부를 찾는 은행가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앵베르 부부가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엄청나게 받았다는 말들이 전해졌습니다. 그렇지만 돈을 빌려준 은행가들은 앵베르 부부를 찾을 수가 없었고, 앵베르 부부가 살던 넓고 화려한 집도 그들 부부의 집이 아니란 사실에 모두 얼굴빛이 노래지거나 새하얗게 백지장처럼 변했습니다. 은행가가 자살을 고려할 정도로 피해는 컸습니다. 그러나 조용히 게거품을 물며 흥분한 사람은 의외로 금고 속 채권을 훔친 의인이었습니다. 그의 말을 전합니다.
“금고 속의 채권은 모두 가짜였어. 단 한 장도 진짜는 없었어.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내가 그 집에 있는 동안 나는 그 유명한 부자인 ‘브로포드 가문’의 방문객으로 알려졌더군. 내가 그 집에 머무는 동안 앵베르 부부는 은행을 돌아다니며 나와의 관계를 과시하고, 채권을 담보로 돈을 빌렸더구먼. 하지만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내가 가장 흥분한 것은 내 돈 1500프랑을 마담 앵베르에게 빌려주고는 돌려받지 못했다는 거야. 그건 내가 가진 거의 전 재산이었어. 그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하면 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나.”
‘앵베르 씨는 어디서부터 그리고 언제 범행을 계획했을까? 강도를 당하기 전부터? 아니면 강도를 당하고 나서 의인을 보면서부터?’
아르센 뤼팽이 바보가 되었던 사건의 전말을 알려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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