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를 베는 사랑 이야기
엄마는 미쳤을 것입니다. 너무나 예뻐 자신이 낳았다는 사실을 믿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엄마는 미쳤을 것입니다. 19년을 곁에 두고 애중중지 키운 딸이 공원 한 구석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엄마는 미쳤던 것이 분명합니다.
언니가 밝은 해라면 언니의 그림자로 살았던 그래서 너무나 황홀했던 동생도 미쳤습니다. 누가 범인인지 알 수가 없다며 증거가 없다는 경찰의 말에 동생은 미쳤을 것입니다. 언니가 없는 동생은 존재 의미를 잃었습니다.
엄마와 동생은 언니를 잊기로 했지만 그건 애초에 불가능했습니다. 동생은 엄마에게 언니를 되찾아주려고 성형을 합니다. 엄마는 잃어버린 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딸의 성형을 성원합니다. 예쁜 언니가 되어 엄마를 위로하려는 동생은 말라갑니다.
엄마는 언니의 처음 이름을 되찾고자 개명 신청을 합니다. 죽은 자의 이름을 바꾸려는 엄마는 죽은 해언을 부정하고 살아있는 혜은을 찾아 헤맵니다. 동생 다언은 부정되고 다은이가 됩니다. 그러나 다은은 혜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엄마와 다은이는 마침내 혜은이를 찾습니다. 해언을 죽인 남자와 그를 보호한 여자가 계산이 맞아 결혼한 후 태어난 신예빈은 죽습니다. 예빈은 혜은이가 되어 엄마와 다언이를 위로하고 정준과 태림은 사라진 예빈을 그리워하며 삶이 망가집니다.
누군가를 지독하게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는 무서운 이야기가 되어 전해집니다. ‘사랑’과 ‘그리움’ 같은 아련한 말은 ‘원한’ ‘앙갚음’ ‘업보’와 같은 시퍼런 날이 선 칼로 변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베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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