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디자이너와 현대자동차 회장님 그리고 다시 국수 다발
고 최진실은 방송 인터뷰에서 어릴 때 하도 수제비를 많이 먹어서 나이가 들어서는 ‘수’ 자만 들어도 신물이 날 정도로 싫다고 했습니다.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고인은 어린 시절 수제비로 끼니를 때웠던 가난이 싫다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으로 들렸습니다. 음식으로 가난을 읽을 수 있었으니 조숙했던 모양입니다. 저의 경우는 고인과는 다릅니다. 하루 한 끼는 반드시, 꼭 수제비나 칼국수로 때우긴 마찬가지인데 그 음식을 지금도 좋아하고 자주 먹습니다. 저는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 가난의 상징인 줄 몰랐습니다. 우리집이 가난한지 어쩐지 관심도 없었고 그저 맛있기만 했습니다.
철이 들어 어머니가 제게 하는 말을 들으면서 그 당시 우리집의 사정을 알았습니다. 하루 한 끼 칼국수나 수제비로 부족한 쌀을 벌충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지겨울까 한 번은 수제비, 한 번은 칼국수, 그리고 고명으로 호박이 있으면 호박으로, 감자가 나올 철이면 감자를 준비했고 부추도 번갈아 자주 넣었다고 했습니다. 싫다는 표정 한 번 없이 너무나 잘 먹어줘서 무척이나 고마웠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제 주위에 많습니다. 숙모는 아이 셋을 키우는데 박봉의 삼촌 월급으로는 밥을 먹이기 어려워 국수를 그렇게 삶았다고 했습니다. 조카들은 국수를 아직도 좋아하는지 아닌지 물어보진 않았습니다.
이탈리아는 국수를 파스타라 부르지요. 세계 최대 파스타 제조업체인 바릴라의 고급 브랜드인 보이엘로에서 유명 산업 디자이너인 조르제도 주지아로에게 궁극의 파스타 모양을 디자인해 달라고 의뢰하기까지 했다니 유난도 이 정도면 대단합니다. 하지만 그가 디자인한 궁극의 파스타는 모양이 너무 복잡해서 균등하게 익히기가 힘들어서 실패했다고 합니다. 기본이 안 된 디자이너였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디자이너가 현대자동차가 1975년 출시한 ‘포니’를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포니는 1976년 6월 에콰도르에 수출을 합니다. 한국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고 합니다. 포니 5대와 버스 1대를 수출했는데도 그랬다고 합니다. 이제 현대자동차는 이미 세계 10대 자동차 제조업체 반열에 올랐습니다. 현대의 정 회장이 우뚝 섰습니다. 현대그룹에서 정 회장을 신처럼 모신다고 해도 이해가 됩니다. 기업을 이끄는 기업가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현대자동차의 성공스토리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뛰어난 영웅적인 기업가 개인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 개인은 주된 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현대자동차에는 긴 근로 시간을 견디면서 생산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한 노동자, 엔지니어, 연구원 그리고 전문경영인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헌신적이고 유능한 직원들이 기업의 비전을 현실화했다는 말입니다. 정부의 정책(유치산업보호정책과 국내 생산 부품 비율 높이라는 압력)도 훌륭했다고 합니다.
성공한 기업들의 공통점은 현대자동차의 성공 요인과 비슷합니다. 저자는 ‘개인보다 집단적 기업가 정신이 중요하다’라고 표현합니다. 삼성이 그렇고 LG가 그렇습니다. 일본의 토요타와 미쓰비시, 핀란드의 노키아도 그렇다고 합니다. 미국의 IBM도 인텔도 애플도 미국 국방부와 군부의 ‘국방 연구’를 통해 개발된 기초 테크놀로지가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국수는 다발로 포장됩니다. 그걸 모두 골고루 익도록 잘 삶지 않으면 먹지 못하는 음식입니다. 국수가 맛있는 것도 한 가닥 씩 먹는 것이 아니라 그럴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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