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입니다. 이층에 올라와 비 내리는 골목을 내려다봅니다.
집을 사서 이사를 온 첫날, 드디어 아파트에서도 탈출했고, 전셋집의 설움도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나라의 주거 형태는 아파트가 반을 넘었다고 하지만 단독 주택에서 살고 싶은 로망은 아직도 반이 넘습니다. 맥주캔을 쥔 손이 차갑습니다. 포장이사를 하느라 그가 한 일은 그저 짐의 자리를 정해주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짐을 나르고 위치를 잡고 깨끗이 청소까지 하고는 썰물이 빠져나가 듯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꾼들은 사라졌습니다. 돈을 쓴 보람을 절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몇 푼 아낀다고 짐정리를 스스로 한다고 했다면 아직도 집은 짐이 차지한 채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녁부터 내리는 비가 추적추적 집안을 적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층 방으로 올라왔습니다. 골목의 가로등 불빛에 빗줄기가 드러납니다. 캄캄한 조명 속에서 골목의 가로등 불빛을 보는 그의 얼굴에 수은등의 차가운 불빛이 비쳤습니다.
이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소리가 납니다. 누군가 조심해서 올라오는 소리입니다. 나무가 낡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계단의 이음매들이 허술해서 그런지 소리가 납니다. 삐걱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립니다. 집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여자 친구는 내일 오라고 했는데… 그는 여자 친구가 자기를 놀래려고 오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어쩐지 들리는 소리가 섬찟한 것이 이 세상의 소리 같지 않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불이라도 켜려고 창문에서 등을 돌리자 문이 열리면서 사람이 보였습니다. 아니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기를 한껏 품은 여인이 배에 칼을 꽂고 서 있습니다. 그는 놀래서 그대로 뒤로 넘어졌습니다. 다음날 집을 방문한 여자 친구에 의해 그의 시체는 발견되었습니다. 두 눈은 놀란 채 감지도 못하고 허공을 초점도 없이 노려보고 있는 시신을 보면서 매매계약 후 들었던 주변의 소문이 생각났습니다. 무서운 집, 이사를 들었던 사람들은 첫날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 나왔다는 말은 이명이 되어 어지럼증을 일으켰습니다. 전화기를 들고는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여기 사람이 죽었어요.”
귀신 이야기는 흥미진진합니다. 공포영화로 분류했던 귀신 영화들이 거의 사라지고 호로물이라고 하는 것들은 이제는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다루는 것들로 대체되어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디 아더스’ ‘식스 센스’ 같은 영화들이 다시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의 흥미를 끄는 그런 이야기들 말입니다. 정보라의 장편소설 ‘죽은 자의 꿈’은 죽은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폭력과 죽음의 이야기를 통하여 폭력적인 사람이 현실에서 미꾸라지처럼 도망가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잘 사는 사람들을 향하여 안심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체로 남의 일에 관심이 없지만 관심 가질 일에는 관심을 갖고 화낼 일에는 오래 분노하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귀신이 되어서라도 쫓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처음부터 중간까지는 잘 따라갔는데, 끝으로 가면서 길을 잃었습니다. 독자의 자질 부족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앞에 쓴 이야기 두 단락은 제가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의 도입부입니다. 이 이야기를 뻔한 결말이 되지 않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게 이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 보려고 썼습니다.
작가의 노력에 상응하는 독자의 감탄이 따르지 못해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지만 다음 이야기에 기대를 걸어보겠습니다.
정보라 작가님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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