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창덕궁 방문기 선정전에서 낙선재까지, 만천명월주인옹 계십니까.

무주이장 2022. 12. 15. 14:49

창덕궁 방문기, 만천명월주인옹을 뵈러 갔다.

 

 인정전 옆이 선정전입니다. 여기도 임금이 정무를 보던 곳이지요? 용포를 입은 외국인이 즐겁게 웃고 있었습니다. 비와 햇빛을 피할 수 있는 회랑이 선정문에서 선정전까지 이어졌습니다.

선정전 외국인 임금께서 궐내를 산책 중이었습니다.
회랑을 중심으로 좌우를 보았습니다.
선정전 현판입니다.

 인정전의 그림과 비슷합니다. 그림의 이름을 검색하니 일월오봉도라고 소개한 분이 계시네요. ‘일월오봉’(실제는 폭포가 있는 봉우리까지 세면 칠봉 같습니다만…) 외에도 소나무가 있고, ‘폭포까지 있으니 ‘일월오봉비류폭포이송도’라고 저는 부를랍니다.

단청이 화려합니다.

 선정전 옆이 임금의 살림집인 희정당이라고 합니다. 제가 간 날은 수리로 희정당과 대조전 쪽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대조전은 왕비가 기거하던 곳이 아닌가요?

희정당 입구의 건물입니다. 이것도 희정당인가요?

 희정당의 앞에 위치한 건물입니다. 입구에 살짝 나온 부분이 임금이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차가 정차하여 임금이 승하차를 하는 곳이랍니다. 차라는 신문물이 들어오면 생활공간도 바뀌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경복궁을 구경하면서 임금이 정사를 보는 공적 공간과 개인 생활을 하는 사적 공간이 남북으로 이어져 실제 사람 사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어떤 이념을 표현하기 위한 인위적 공간으로 느껴져 사람 사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창덕궁에 와서는 인정전과 선정전 바로 옆이 희정당이라 사람이 살았구나 느낌이 들어 좋았습니다. “잠깐, 내 잠시 중전을 보러 가야 하겠소라며 옆집으로 가는 임금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임금도 사람이니 사람같이 사는 모습이 자연스럽습니다. 임금이 이념의 상징처럼 느껴지면 임금은 사람들과 더불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천상의 존재가 되고 우상이 됩니다. 백성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그저 군림하는 임금은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희정당 옆이 아들인 동궁의 거처라니 더더욱 가족의 단란함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왼쪽의 건물이 희정당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성정각으로 동궁이 기거하던 곳이라고 기억합니다. 하지만 책을 놓은 지 제법 시간이 흘렀으니 자신을 할 수는 없군요. 검색하시기 바랍니다.

동궁의 거처가 오붓하고 소박하게 보입니다.

 이 씨 왕가도 우리가 익히 알듯이 일제의 침략으로 인하여 그 끝을 봅니다. 왕궁 한 구석 어디에 왕가의 끝이 보이는 곳이 있을 듯하였는데, 창덕궁 한쪽 끝에 있는 곳이 낙선재였습니다. 왕가의 마지막 자손이 움츠린 곳이었고, 옹주가 살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왕가가 망한 것이 무엇 하나라도 아쉬운 구석은 없지만, 왕가를 떠나 일족의 흥망성쇠라고 보니 안타까움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낙선재의 본채입니다.

 본채와 곁에 별채가 있었습니다.

낙선재의 별채입니다.

 유홍준 선생님의 책을 보고 다녀온 창덕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