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에코리브르 간행1.

무주이장 2022. 7. 26. 13:22

농사에는 농약이 없어도 될까요?

 

 제가 퇴직 대책이라고 생각한 것은 농사일입니다. 사주에게 시달리고, 상사와 갈등하고, 일에 지치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그럼 무얼 하지? 생각하게 되었고 문득 어린 시절 농대를 가고 싶었다는 생각이 기억났습니다. 마침 개발을 하기 전 회사가 보유한 농지가 있어 주말농장이라 생각하고 밭작물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밭 규모가 제가 맡은 면적이 약 400평 정도라 주말농장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은 편이 아니었지요.

 

 상추류는 따로 약을 칠 작물이 아니라, 씨가 보이는 대로 모두 긴 밭 한 고랑에 심고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수확량에 깜짝 놀랐습니다. 상추를 먹느라, 삼겹살과 고등어를 물리도록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는 아파트 출입구에 상추를 두어 이웃들과 나누기도 했습니다. 차츰 밭일이 익숙해지자, 들깨, 수수, , 팥 등 잡곡농사를 시작했고요. 일 년을 먹을 정도의 수확이 되었습니다. 연작 피해를 줄이려고 골을 달리해서 심기도 했지만, 결국 병충해가 생겼습니다. 약을 치지 않고 열심히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가족이 먹을 정도의 소출만 있으면 만족했기에 그랬습니다. 재래종 수수가 키를 키워 벌겋게 익어 탐스러운 수수를 머리에 달고 축 늘어진 모습은 보기만 해도 저의 능력에 만족했고 든든했습니다. 밭에 도착하면 수수를 먹으려고 온 동네 참새들이 저를 피해 후드둑 날아가는 모습이 장관인 것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수수는 제가 1/3을 먹었고 참새들이 나머지를 먹었습니다. 반반 나누자고 약속했는데 참새들이 지키지 않아 다음 해는 양파망으로 아예 위약벌을 내리기도 했지요.

 

 그래도 퇴직은 저의 예상보다는 조금 더 늦었지만 올 것은 오고 마는 법, 명예는 없는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말이야 언제든지 회사를 그만둘 수 있다고 했지만, 회사가 요구한 퇴사에 섭섭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요. 섭섭한 마음에 상한 마음도 달랠 겸 내려간 곳이 무주였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비어 있는 이웃 형님의 집이어서 관리도 할 겸 내려갔습니다. 이제 주말농장이 아닌 전문 농군들이 작물을 키우는 밭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주는 읍을 중심으로는 복숭아와 포도 농사가 많습니다. 무주는 논이라고는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농경지라고 해도 밭농사 위주의 산골이니까요. 읍을 떠나 거창이나 김천이 가까운 무풍면으로 가면 거의 대부분의 농군들은 사과농사를 합니다. 그 외에도 블루베리, 자두 농사도 간혹 있지요. 여름부터 가을까지 무주는 과일 풍년입니다. 무주에서 10개 월을 지내다 다시 도시로 와서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그래도 무주에서 안면이 익은 분들의 도움으로 밭을 빌려 오미자 농사도 두 해 지었고, 사과도 한 해 경험을 했습니다. 옥수수, 맷돌 호박, 수수도 경험을 늘렸습니다. 주말 농장과 다른 것은 제 집의 수요보다는 훨씬 많은 수확이 있어 판매를 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옥수수도 비료를 많이 줘야 덩치가 커져 상품성이 있어지고, 맷돌 호박도 금실 금실 크고 실해야 좋은 호박으로 쳐줬습니다. 그래도 약을 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연작 피해가 생길 정도의 긴 기간이 아니었던 것이었지만, 사과농사는 달랐습니다. 시작할 때부터 같이 농사를 짓기로 한 분과 직접 약을 치지는 말자는 약속을 했던 터라, 이웃의 전문가에게 농약치기는 위탁을 했습니다. 전문가의 SS기는 모두 13번을 왔고, 농약값과는 별도로 한 번에 10만 원의 수고비를 지출했습니다. 300주의 사과나무를 병해충에 방치할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가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잔류농약이 없다고는 하지만 허용기준치 이하라는 말인지 약을 친지 보름 후면 아예 잔류하지 않는다는 것인지는 아직도 저는 모릅니다. 이때가 2021년이니 농약을 만드는 기준도 엄격하고 높아지지 않았겠나 믿고는 싶습니다. 오미자요? 그건 약을 치지 않았습니다. 그냥 같이 하겠다는 분들과 나눌 정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오지랖 넓은 옆 사과밭 농군에게 욕까지 먹으면서도 밭에 풀만 관리했습니다. 자주 못 가고 2주에 한 번 밭에 들러 작업을 하느라 600평이 넘는 밭에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예스24의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