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지음, 열림원 간행 2.

무주이장 2022. 7. 24. 21:20

하나님을 만나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거울을 갖게 됩니다.

 

 저자가 세례를 받은 후 예수쟁이라고 욕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화내지도 않고요. 그 이유는 욕을 하는 그들의 얼굴과 거동에서 저자 자신이 그동안 걸어왔던 외롭고 황량한 벌판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남을 찌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막의 전갈 같은 슬픈 운명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의 문학계 데뷔는 우상의 파괴라는 글로 비롯됩니다. 이 글은 전갈의 독침을 가진 글처럼 보입니다. 나무 위키에서 그의 데뷔 글에 대한 설명을 옮깁니다.

이어령은 이 글에서 당시 문단의 거두였던 소설가 김동리, 모더니즘 시인 조향, 소설가 이무영을 각각 '미몽(迷夢)의 우상', '사기사(詐欺師)의 우상', '우매(愚昧)의 우상'이라고 비판했다.[22] 당시 이어령은 겨우 22세였기 때문에 '뭐 신인이고 하니까 조그맣게 나오겠지' 싶었는데 한국일보는 이 논설을 본지면의 부록 격인 일요판[A] 한 면 전체를 할애하여 실었다. 당시에는 작가들이 대중 사이에서 스타 역할을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어령은 그야말로 화려하게 데뷔하게 된다.

그 이후로도 황순원, 염상섭, 서정주 등을 '현대의 신라인들'로 묶어 신랄한 비평을 가했다. 1959년에는 한 경향신문 지면을 통하여 김동리와 이른바 '비문 논쟁'을 벌였다.’[24](나무 위키)

 

 당시 22살의 젊은이는 이후 성공가도를 지나면서 오히려 문단의 권력이 되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였으니, ‘자신이 걸어왔던길을 뒤돌아보며 외롭고 황량한 벌판을 보게 된 모양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사람이란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서 자기만족에 빠지기도 하지만 회환이 한두 가지 없을 수도 없고, 회개를 요구하는 잘못된 일이 멱살을 잡는 경우도 오래 생각하면 있기 마련이니까요. 다행히 저자는 사막의 전갈 같은 슬픈 운명에서 벗어난 것 같아 보여 다행입니다. 저는 아직도 독침이라며 겁을 줘봤자 혀가 약간 마비되는 그런 미약한 독임에도 눈을 부릅뜨고 슬픈 운명을 살고 있습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은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될 때 쓰는 말인 것 같은데도 공격이란 공격은 모두 방어벽에 맥도 못 추는데도 말입니다. 사마귀가 달려오는 수레바퀴에 맞선 꼴입니다. 당랑거철입니다. 저자는 지성의 무력과 붕괴를 통해서 그것을 넘어선 영의 세계, 초월의 세계에 이르는 모험(175)에서 자신 이외의 사람에게서 자신을 봅니다. 그러면서 이런 경험을 특별한 것으로 여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가슴 깊이 파고 들어가면 거기 영성의 수맥이 흐르고 있을 것이라고 쓰고 있으니까요.

 

 살기 바빠 어린 딸을 키우면서 소홀했던 일들이 지금 아이에게 상처로 나타나서, 저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딸에 대한 사랑이 절절이 흐르는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왜 나는 딸에게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다 주면서 키우지 못했을까 후회를 합니다. 하루하루를 왜 그렇게 불안하게 생각하며 살았는지, 불안하니 타인의 간섭이 공격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래서 타인에게 반격하는 황량하고 외로운 삶을 살았던가 회한이 남습니다. 그래도 이제 그런 나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회개하는 시간을 맞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나의 딸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백하며 감사해야 하는데, 아직도 망설이고 번민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 문지방에 걸터앉아 넋을 놓고 있습니다. 저자의 이야기가 저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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