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치에 관심이 많습니다.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눈 뜨고 당할 수 있다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을 했습니다. 당시 은행원의 월급은 은행이 결정을 할 수 없었습니다. 재무부에서 점심값까지 간섭을 했습니다. 하는 일에 비해 월급이 많다는 이유도 있었고, 월급이 많으면 우수한 대졸 인력들이 은행으로 쏠려 박통이 추진하는 수출입국 정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 때문이라고도 했습니다. 대통령은 우수한 인재가 종합상사에 가서 수출에 매진해야지, 매뉴얼대로만 하면 되는 은행업무는 상고 졸업생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도 들렸습니다. 사실 이렇게 된 것은 5.16쿠데타를 일으키기 전 박정희 소장이 군에 있을 때 옆집에 살던 사람이 아침 출근 시간에 기사가 딸린 승용차에 골프채를 싣고 가는 것을 무수히 보고는 부관에게 “저 사람 뭐하는 사람이야?”하고 물었더니, “은행 지점장입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나서 쿠데타 후 꼴 보기 싫었던 은행원들을 통제하였다는 소문이 은행원들 사이에서는 정론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장군도 감히 하기 어려운 골프를 고작 은행 지점장이 무시로 다니는 꼴이 보기 싫었다는 겁니다. 박통에게 아부를 떨어야(정치를 해야) 월급이 오를 수 있기에 은행에 호의적인 재무장관,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장관이 필요했습니다. 은행원에 호의적인 대통령이면 더 좋겠지만 당시 대통령은 우리가 뽑을 수 없었습니다.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았더랬습니다. 저를 대신해서 은행장들이 재무장관에게 정치를 많이 했습니다.
대통령 선거도 끝났고, 지방선거도 끝났습니다. ‘2022년 대선은 ‘정치 전쟁’이었다’는 책의 소개말을 보고는 구입을 했습니다. 강준만 교수, 정말 다작하는 교수입니다.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는 인물평에 흔쾌히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가 쓴 글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실망해서 아직도 뉴스조차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았으면 합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한 꼭지 씩이라도 정리를 하려고 합니다. 정치, 이것 정치인들이 못 바꿉니다. 국민이 나서야 바뀝니다. 그것도 ‘중립 기어 박고’ 봐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강준만 교수의 글을 편 갈라 보지 말고 보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장기도 바둑도 두는 사람보다는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잘 보긴 하지만, 두는 사람 입장에서는 훈수꾼이 미울 때도 많습니다. 그건 강 교수도 알겠지요.
‘충성 경쟁’ 이 대통령을 망친다.
하나마나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책이 있다는 것에 깜놀입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친애하는 지도자’에 관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입 밖에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정권의 신뢰를 받아도 좋을 사람일 가능성이 더 크다. 말도 안 되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수 있는 부하는 투자해도 좋은 부하다.”(브라이언 클라스, 서종민 옮김, 권력의 심리학:누가 권력을 쥐고 권력은 우리를 어떻게 바꾸는가, 웅진지식하우스 250쪽)
히틀러에게 절대적 충성을 했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힘러는 자신의 부하들에게도 똑같은 충성을 요구했다 그가 충성심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기 위해 사용한 유일한 기준은 비도덕적이거나 불쾌하게 여기는 명령을 내렸을 때 기꺼이 실행하는지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에릭 펠턴, 윤영삼 옮김, 위험한 충성: 충성과 배신의 딜레마, 문학동네 15쪽)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은 “난 단순한 충성을 원하는 게 아냐. 진짜 충성을 원한다고. 대낮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내 똥구멍을 핥으며 꽃냄새가 난다고 말할 수 있는 놈 말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에릭 펠턴 같은 책, 221쪽)
문재인 정권이 실패했고(저는 동의 않는 쪽입니다), 정권 재창출도 실패(이건 사실이지요)한 이유가 강준만은 ‘문재인에게는 ‘원조 친노’로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유인태 같은 사람’을 배척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인태는 문재인과 오랜 개인적 인연도 갖고 있지만, 문재인에게 직접 쓴소리를 한 이후 연락이 뚝 끊기고 말았다.’ ‘문재인이 옹졸해서 그런 점도 있었겠지만, 그게 바로 권력의 속성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강준만은 충성과 순응을 구별해야 한다면서 ‘대통령이 잘못된 길로 갈 때엔 순응하지 않고 바른말을 하는 게 충성이다. 그런데 문제는 잘못된 길인지 아닌지 그걸 판단하고 입증하는 게 영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라는 역시 하나마나, 그러면서도 실현 불능에 가까운 주장을 합니다. 바둑을 두면 이길 경우도 질 경우도 있습니다. 대국이 끝나고 복기를 하면서 하는 이야기는 별 영양가가 없습니다. 그것도 막 대국이 끝나 승부가 결정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강준만이 책에서 자주 얘기하는 '내용'이 아니라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히틀러도 하인리히 힘러도 린든 존슨도 강준만에게 “그래서 그랬구나~” 수긍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랫것의 입장에서도 똑같이, 충성을 하면서 자리에서 밀려나는 더러운 꼴을 당하기 싫은 것 또한 인간의 본능이고 이기심이라 훈수꾼이나 해설꾼이 ‘순응 말고 충성’을 말하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속으로 이럴 겁니다. ‘니가 해봐’
그럼에도 강준만의 결론은 우직하고도 강직합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한사코 피하더라는 게 이미 상식으로 굳어질 만큼 확인되었다. 하지만 정녕 ‘순응하지 않는 충성’을 원한다면 그런 나쁜 상식을 깨는 길밖엔 없다.’ 대통령은 인간 이상의 것이어야 할 듯합니다.
치열하게 편을 갈라 죽기 살기로 싸운 뒤 나온 대통령이라 전리품도 챙겨야 하고, 폼도 잡아야 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손 봐야 할 사람도 있고, 아랫것들도 덩달아 날뛸 텐데, 충성과 순응을 구별하여 사람을 부리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될 수 있다는 희망도 없지만서도요. 강준만의 상식은 과거 경험으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실현 불능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래도 필요하다고 우직하고 강직하게 말할 때는 결론보다는 방법을 말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 방법을 찾아 책을 계속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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