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운동장’은 누구에게 기울었는가?
지난 대선이 가까웠을 때, 제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방송이라는 것들이 모두 여당 편이라서 볼 게 없어요.” 의외의 말이었습니다.
“전 많은 언론이 모두 야당 편인 것 같은데요.” 제가 한 말입니다.
언론지형이 여당에 불리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사람의 시각은 뇌의 판단에 따라 왜곡이 되는가 보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팩트라고 하지요)을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언론지형을 보는 시야의 편향에 대한 설명을 찾아봤지만, 무력했습니다. 강준만 교수가 설명을 하고 있어서 옮겨봅니다. 별도의 따옴표를 생략합니다.
‘기울어진 언론 운동장’이란 말이 있다. 진보와 보수, 또는 여야 정당 중 어느 한쪽이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언론 시장에서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쓰는 말이다. 나도 한 때 이 말을 많이 썼다. 진보 정권이 들어섰다 해도 시장은 보수 언론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에 진보 정권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썼다. 종이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이 많았던 시절이다. 하지만 디지털 미디어가 신문을 압도하고 소멸의 위기로 내몰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이 말을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말은 여전히 쓰이고 있다. (중략) 어느 쪽 말을 믿어야 할까? 둘 다 믿을 필요 없다. 인터넷.소셜미디어.유튜브 등 뉴미디어가 기성 언론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 형성 권력은 언론에서 소비자들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언론 운동장’의 기울기는 어는 쪽 지지자들이 미디어 소비와 참여를 더 활발하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중략) 그렇긴 하지만 의제 설정에서 기성 언론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므로 언론의 속성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언론사마다 특정 후보를 선호하는 정파성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건 사설이나 칼럼을 통해서만 드러날 뿐이며, 영향력도 매우 약해졌다. 뉴스에도 정파성이 스며들긴 하지만, 뉴스 의제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세상이 아닌가? 뉴스는 소비자들의 흥미성이나 호기심 충족을 기준으로 선택된다. 사회적 중요성도 그 기준에 부합할 때에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다. 소비자의 클릭 하나로 승부를 보는 오늘날엔 흥미성과 호기심 충족이 절대적인 제1의 뉴스 가치로 등극했다. (중략) 반대편 언론의 비판을 ‘악마의 목소리’로만 듣지 않아도 절반의 성공이다. 여론 형성 권력은 언론에서 소비자들에게 넘어갔다는 걸 믿고, 비판 언론에 화를 내지 말고 국민의 마음을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좋다.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신 분의 글이라 그런지 설득력이 꽤 있습니다. 흔쾌히 동의합니다. 같은 편을 지지하시는 분들의 미디어 소비와 참여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와 정치인에 관심을 가져야 우리가 가진 쥐꼬리만 한 권리와 이익 중 일부를 떼서 더 가진 자에게 바쳐야 하는 일이 적을 것이니까요. 정치는 가진 자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방향성을 가집니다. 정치와 정치인을 지켜보는 것은 나의 이익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정의와 공정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추상적인 표현을 많이 쓰는 정치인은 의심을 하십시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6.21 부동산 정책을 분석한 한문도 교수의 인터뷰를 보시고 악마의 유혹, 악마의 손길에 당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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