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증오 없는 삶은 살지 못합니다. 증오 없이 사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알렉시예비치의 법정 진술 중에서)
윤석열 대통령 사저 앞에서 진보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양산 시골마을의 시끄러운 집회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도 시위가 허용되는데 뭐 법과 원칙에 따라 어디서나 시위는 할 수 있다는 뜻의 말을 하자, 윤 대통령이 전 대통령의 양산 시골집 앞에서 일상적으로 있는 욕설과 고성이 난무하는 집회를 허용하고 장려하는 태도라고 생각하여 맞불을 놓는다고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보수라고 자칭하는 사람들도 같이 그들의 맞은편에서 집회를 열고 있답니다. 이래저래 윤 대통령의 집 앞은 더욱 소란합니다. 대통령의 말마따나 모두 법과 원칙에 따라 하길 바랍니다. 서울에는 아이들이 잠을 못 자 힘들다는 현수막이 걸리고, 양산에는 어르신들이 병에 걸렸다는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법과 원칙 운운하는 대통령은 자기 집 맞은편에서 서로를 욕하면서 시위하는 국민, 또는 시민들 사이에 깔린 정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증오입니다. 이 증오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아니 풀 생각은 있을까요? 법과 원칙이면 될까요?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은 절대 이 증오를 풀 생각이 없을 것입니다. 증오 없이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연 소년들’이란 책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1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부상당한 소련 상이군인들, 사망한 장병들의 유가족들을 취재하면서 쓴 글입니다. 사망한 아들을 그리는 어머니의 절절한 심정이 가슴을 후비고, 무엇을 위해서 전장에서 팔다리를 바쳤던가를 후회하는 참전군인들의 증언이 책에 가득합니다. 작가는 이들의 증언을 ‘다큐문학’으로 승화시켰고, 작가 스스로 이러한 문학 장르를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 ‘소설-코러스’ 라고 부릅니다.
이 책이 전 세계에서 출판이 되면서 세계인의 관심을 가지게 되자, 작가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됩니다. 작가와 함께 대화를 하고, 그래서 책에서도 소개된 두 사람에 의해 고소가 되어 벨라루스 수도의 중앙지법에서 재판이 시작됩니다. 원고 중 한 명인 전몰장교 U. 갈로브네프 대위의 어머니 인나 세르게예브나 갈로브네바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선적인 행동과 공허하고 알맹이 없는 대화
‘본인은 알레시예비치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관련된 사건들을 정치적 실수이자 우리 국민 전체의 잘못으로 몰아가기로 작정하고 자신이 상상한 내용을 마치 인터뷰 중 나온 이야기인 것처럼 책 속에 의도적으로 등장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알레시예비치의 목적은 우리 국민-아프가니스탄에 다녀온 병사들과 그들의 가족-을 원칙도 없고 잔인하며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사람들로 보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 한 명의 고소인인 전역 병사 타라스 케츠무르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알렉시예비치의 글은 본인의 이름만 빌렸을 뿐 완전히 날조된 이야기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입니다.’
이제 작가의 주장을 들어봅시다.
‘언젠가, 그러니까 몇 년 전, 정확히 4년 전에 우리들은, 즉 저와 지금 이 법정에 나와 계신 많은 어머니들과 낯선 땅 아프간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서로 생각이 같았습니다. 내 책 ‘아연 소년들’에서는 어머니들의 사연과 기도들이 가장 가슴 아픈 페이지들입니다. 어머니들은 전사한 아들들을 위해 기도하지요… 그런데 왜 우리가 지금 서로 적이 되어 법정에 앉아 있어야 하나요?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중략) 어머니들의 등 뒤에서 저는 장군들의 견장을 봅니다. (중략) 저를 법정으로 불러낸 사람들은 몇 년 전 저에게 했던 이야기를 부인합니다. 저는 인나 세르게예브나 갈로브네바를 만났을 때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렷이 기억합니다. 저는 그녀를 좋아하게 됐지요. 그녀의 아픔, 그녀의 진실 때문에요. 고통에 신음하는 그녀의 심장 때문에요. 그런데 지금 그녀는 정치가이자 공식인사이자 전몰용사어머니회 회장입니다. 이미 다른 사람이지요. (중략) 타라스 케츠무르는 제 주인공들 중 한 명입니다…하지만 여러분이 지금 법정에서 보고 있는 이 사람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돌아왔을 때의 그 사람, 그 사람이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책의 구절을 읽어준다) 이 이야기는 타라스도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글이 역사의 심판대에서 타라스의 명예와 품위를 지켜줄 겁니다. 그리고 저의 명예와 품위도요.’
대충 왜 소송이 일어났고, 고소인의 입장이 어떤 지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 참전을 한 군인들을 ‘국제주의용사’라고 부르거나, ‘특별파견대’라고 부르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명예를 수여하고, 전쟁의 규모를 왜곡하기 위한 목적이 숨어 있다는 것을 간파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국제주의용사’라는 것은 스페인에서 파시스트들과 싸웠던 국제여단과 비슷한 인상의 효과를 노린 완곡어법일 뿐이고, ‘특별파견대’라고 부르는 것은 파렴치한 공격 의도와 실제 공격 규모를 은폐할 목적으로 전쟁 주동자들이 만든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그레고리 브라일롭스키, 대조국전쟁 참전 상이군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있습니다. 전쟁의 주동자들은 소련의 아프간 침공이 잘못된 전쟁이고 아무리 좋게 불러도 이민족을 살해하였다는 혐의에서 벗어나질 못한다는 판정을 뒤집길 원했다고 보입니다. 그래서 책 속의 주인공들을 고소인으로 등장시키고, 벨라루스 정부는 이들의 소송을 진행했다는 의심이 듭니다.
작가가 들은 고소인들의 증언이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작가에 따라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어제 무난하게 한 일이 오늘은 비난을 받을 수 있고, 어제 당한 조롱이 오늘 영광으로 올 수도 있지요. 그 과정에서 증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돈벌이를 합니다. 오늘 양산 시골에서 시위를 빙자하여 욕설과 고성을 뱉는 사람들의 목적이 유튜브의 조회수를 노린 것이든, 전 대통령의 정적들의 바람을 실어 어깨 으슥하며 동네 골목대장을 꿈꾸든, 이들의 말과 행동에는 증오가 묻어납니다. 현 대통령의 태도에 불만을 표하며, 법과 원칙에 따라 대통령이 사는 집 앞에서 집회를 하는 사람들도 누군가 시작한 증오에 대한 반발일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항상 행동대장으로 나서는 분들의 의도와는 달리 그 증오를 조장한 사람들은 따로 있고, 그로 인한 이득도 훨씬 크고 분명하게 얻는 사람들은 저쪽에 따로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들을 찾아내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위선적인 행동과 공허하고 알맹이 없는 대화’를 하는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법과 원칙이 어째서 이어령 비어령이 되는지는 위선적이고 공허하고 알맹이 없는 대화를 하면서 증오를 하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가의 책에는 위선적이고 공허하고 알맹이 없는 내용이 없다는 확신을 가집니다. 제가 소련의 아프간 침공이 얼마나 많이 소련 국민들을 아프게 하고 허망하게 했는지 알게 된 것이 엉터리가 아니길 바라기에 가지는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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