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땀눈물-아나운서-이선영, 상도북스 간행
피땀눈물 책 중 세 번째 책을 들었습니다. 아나운서 이선영 씨가 방송국의 아나운서로서 18년의 시간을 공들인 사연들을 정리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어디서 그녀의 피와 땀과 눈물을 찾아야 할지 의아했습니다. 그러다 나온 게 있습니다. 작가의 글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방송일에, 꽃에, 책에, 쉼 없이 달리는 경주마 같은 딸이 레이스에서 즐길 수 있도록 빈자리를 든든히 채워주시는 엄마.’ 그랬습니다. 아나운서 이선영 씨의 피땀눈물보다는 어머니의 피땀눈물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이 나라의 여성 직업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시간과 노력과 진심을 다 바친 어머님의 피땀눈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허전합니다. 이 얘기가 아닐 건데? 의문이 일어났습니다. 책을 계속 읽어갑니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가 기억났습니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업 1순위가 모델이라고 합니다. 한참 전에 들은 이야기라 지금도 그런 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다음 이야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자기 직업을 가장 싫어하는 직업군 1순위가 모델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 선택권이 없는 직업이 모델이라는 설명입니다. 패션쇼 무대 뒤는 아수라장입니다. 선을 보일 옷을 갈아입느라 난리도 아닙니다. 모델이 속옷을 입고 있는 걸 본 디자이너의 호통이 터졌습니다.
“누구 옷을 망치려고 속옷을 입어! 당장 속옷을 벗지 못해!”
옷보다 못한 존재, 옷선의 아름다움을 위한 존재가 모델입니다. 디자이너의 눈에서 벗어나면, 한마디에 무대를 잃어버리는 직업이 모델입니다. 디자이너의 옷을 산 사람들 중에 속옷을 벗은 채 그 옷을 입는 소비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어쨌든, 모델들이 자기 직업에 만족을 못하는 이유를 저는 ‘소외’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나운서는 어떨까요? 저자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방송국 아나운서는 늘 선택당하는 입장에 있다. 잘해도 잘하지 못해도, 자신이 있어도 자신이 없어도, 누군가 나에게 기회를 줘야만 그것을 수행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실력보다 인지도가 더 필요한 경우도 왕왕 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기회가 올 수는 있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기약도 없다. 영영 인연이 안 닿을 수도 있고.’ 아나운서라는 직업의 자기 만족도는 어떨까요? 궁금해졌습니다.
방송국에 취직하기 위한 시험을 방송 고시라고 한때 불렀습니다. 저자가 경험한 방송국의 아나운서 시험도 1,000대 1이고, 900명이 허수라 할지라도 100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통과하기 어려운 관문입니다. 모든 시험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공부해서, 직종을 선택하여 응시하고 결과를 얻습니다. 선택의 기준은 분명하고, 당락에 따라 성취감을 얻거나, 실망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마도 아나운서는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이 있을 것입니다.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수재들의 집단이라는 자부심입니다. 높은 성취도를 이루고 합류한 아나운서는 대중에게 일상적으로 얼굴을 보입니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매일’ 서고, ‘뫼비우스의 띠’ 같은 시간을 사는 사람, 매체를 통하여 인지도를 높이는 사람, 지금도 이들의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모델이라는 직업처럼 말입니다.
이선영 씨의 글을 읽다 보면, 아나운서의 일에 대한 애착과 함께 자신이 소모된다는 느낌으로 지쳐가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시청자의 공감을 얻기 위한 ‘찐’ 리액션이 어떻게 하면 얻어지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나, 본업에 120퍼센트 같은 90퍼센트를 쏟아붓고, 남겨둔 10퍼센트로는 늘 ‘숨 쉴 구멍 파놓기’에 힘썼다는 표현도 그랬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방송을 위해 대본을 외우고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여 내 말로 전환해 전달하는 일, 그것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렇게 나는 나 스스로를 소진했다’는 표현에서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수입면을 떠나서는 재미없겠다는 확신도 슬그머니 들어왔습니다. 매일 다른 이야기에 굶주리는 방송의 특성상 소모되는 것은 출연자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자가 십 년을 넘게 교양 정보 프로그램만 생생하게 해올 수 있었던 노하우는 ‘리셋’이라고 하는 설명에서는 갑자기 ‘존버’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제의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리셋 과정이 생존과 발전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노하우가 어쩐지 처량하게 들렸습니다. 좋은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존버’하는 수많은 군상들, 그들 일상의 모습이 저자의 모습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변화 없는 일상이나 새로운 환경에 의해 위협을 받지 않는 직업군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자의 피땀눈물은 어머니의 피땀눈물에 기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선택한 직장에서 본의든 타의든 선택의 연속선상에서 연주되는 삶을 살아내면서 흘린 피땀눈물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습니다.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다’고 우리는 종종 생각합니다. 말장난 같지만, 그게 아니랍니다. ‘살아남은 자가 강한 놈이다’는 말이 진리라고 합니다. 많은 월급쟁이들은 경험상 알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버티고 살아남으면 결국 강자가 된다는 것을 두 눈으로 매일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올바른 전제가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강자가 되고 싶은 야생의 환경이 내가 살고 싶은 곳인가라고 먼저 묻고, 그렇다면 ‘존버’해라고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1982년생인 저자가 무엇보다 듣기 싫어하는 말이 꼰대라고 합니다. 제가 저자의 책을 읽고 든 생각을 정리한 것이 꼰대짓을 한 것으로 읽힐까 걱정입니다. 이선영 씨의 글에서 아직은 쉽게 공감하지 못할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읽혀져서 이런저런 생각의 먼지들이 이 글에서 꼰대짓을 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입니다.
이 글은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P.S. : 47쪽 위에서 일곱 번째 줄 경험에 붙어있는 접속사는 오타인 듯합니다.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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