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 읽기(770호) 기자의 프리스타일, 초대받지 못한 2년의 ‘상실’, 김연희 기자
김연희 기자의 글, 대강은 이렇습니다.
4월 말, 임기 마무리를 앞두고 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방역 현장 근무자들 120명을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개최했는데, 끝이 보이지 않던 감염병 위기를 지나 서로의 노고를 격려하고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날이 와서 감격스럽고 안도감도 들었지만, 이번 코로나로 인한 재난으로 숨진 2만 명이 넘는 사람들과 그 유가족들, 학교에 가지 못해, 생계 위기에 내몰려서, 사회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져서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어 가혹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사람들이 성찰되지 못하고 온당하게 위로받지 못하는 희생과 상실은 당사자에게 더욱 아프게 다가올 터, 재난이 할퀴고 간 자리를 지운 성공의 기억이라면 자랑스럽게만 여길 수는 없다는 내용입니다.
성공을 기념하고 축하하고 성공의 자리를 만든 유공자들을 격려하는 것은 앞으로 다시 올지도 모를 위기에 대처할 역량과 의지, 결심을 굳히기 위해서도 필요한 행사일 것입니다. 당연히 칭찬과 감사의 말이 넘쳐날 것입니다. 이들에게 감사하는 자리에서, 재난에 희생된 분들에 대한 기억과 유가족에 대한 위로의 말이 있으면 좋을 것이었습니다(저는 아무런 정보도 없지만 위로의 말이 있었기를 바랍니다) 김 기자의 글은 청와대의 행사에서 '재난이 할퀴고 간 자리’를 지운 행사였다는 아쉬움이 묻어났습니다. 그렇게 보니 김 기자의 구체적인 지적은 없지만 청와대의 행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화자찬’의 행사였다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이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하시겠지만 그런 의심이 드는 이유는 ‘그 자리를 지운 성공의 기억이라면 자랑스럽게만 여길 수는 없다’는 가치판단의 결정을 하는 글 때문입니다.
저는 김 기자가 행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글을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전 정부의 행사 진행자가 코로나로 인한 피해자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무시하지도 않았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절이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재난이 할퀴고 간 자리에 대한 위로와 보상은 지금 정부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할 사안입니다. 전 정부도 여러 가지 정책을 두고 고심하고 진행시킨 것은 우리도 압니다. '재난이 할퀴고 간 자리'가 없는 것처럼 보일 우려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별도로 시행하더라도, 방역업무에 전력을 다한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감사, 그들의 실적에 대한 찬사의 자리는 필요합니다. 전 정부에 대하여 적대적인 언론들이 청와대에서 한 이번 행사에 대하여 비판하는 기사를 본 기억이 많이 없습니다. 만약 자화자찬의 행사였다면 입을 다물고 있었을까, 내가 못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김 기자의 글에는 지면의 한정도 있었겠지만, 그래서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한 내용도 있어 저의 오해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너무 쉬운 글쓰기가 아니었나, 너무 쉬운 결론, 너무 좋은 결론, 너무 쉬운 비판의 함정에 빠져, 행사의 취지와 자세한 행사 내용 등에 대한 설명도 없이 쓴 글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에 글을 썼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김 기자의 글에 긴 댓글을 단 것이라면 미리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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